- 내가 만난 추명순 전도사 : 말도 출신과 도서지역 목회자의 글
서종표 목사(군산중동교회) |
이덕성 목사(전 말도교회 시무)의 글
추 전도사님께서 하늘 고향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날, 저는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밤으로 적막한 시간 애석하고 아릿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 별이 졌군요. 누가 알까요? 소외된 땅을 꿋꿋이 밝혀주셨던 성결교회의 별 하나가 진 것임을.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추 전도사님은 언제나 목매 부르던 찬송처럼 그렇게 주님의 일을 하시다가 주님 품에 안기셨네요. 그토록 사모하고 바라시던 주님의 품에... 지금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행복하실 그 모습이 지금 너무나도 눈에 선합니다. 저는 그분의 뒤를 이은 후임 목회자였습니다. 약 9개월 동안 전도사님을 직접 모시고 사역하였고, 그분이 은퇴하여 성락원에 가신 후에도 저의 할머니로 모시며 관계를 지속하였습니다. 지금은 이 땅에 계시지 않기에 세월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그분과 함께했던 지난 복된 날들을 회상하며 기억의 편린을 떠올려서 그분의 삶과 사역을 전하려 합니다.
원색적인 성결복음의 전도자
추 전도사님은 원색적인 성결교회의 전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한 오직 한 목적의 사람이셨습니다. 제 눈에 비친 추 전도사님에게 자신은 없고 주님만 계셨습니다. 늘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하시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소원과 열심 외에는 아무런 사심도 없으셨습니다. 개인적인 욕심도 없었기에 세상에서 참으로 초연하셨습니다. 그저 주님께 매여 있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여인이셨습니다. 바다 건거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 그곳을 홀로 복음 들고 간 것도 주님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겨워 오직 주님의 손을 잡고 끝까지 섬 목회 한 길만 걸어갔습니다. 그분이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한 곳은 고군산 열 개 섬 중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말도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주님의 여종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복음 전하는 할머니 전도사일 뿐이셨습니다.
중동교회 김용은 목사님의 보냄을 받아 52세에 시작된 추명순 전도사님의 24년간의 말도 사역은 단언컨대 그분만이 아는 땀과 피의 눈물로 채워진 시간일 것입니다. 우선 전기가 없기에 촛불을 켜며 생활하고 겨울에는 난로 하나도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궁이에 솔가지 때서 짓는 밥을, 쌀이 떨어져 거를 때면 주님이 주신 금식기도의 기회로 여기며 성전에 가서 엎드리시기를 수없이 반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설 이야기가 나오면 기도하니 성령께서 배고픈 것도 모르게 하셨다 하며 맑은 미소로 그저 옛이야기 하시듯 하셨습니다. 추 전도사님은 절해고도의 섬에서 마주하는 그 많은 불편함을 당연하게 혹은 감사로 여기시면서 당시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냉대조차 사랑으로 뜨겁게 녹여내셨습니다. 그러나 옛부터 그들에게 면면히 이어져서 자리잡고 있는 미신과 우상숭배와는 치열하게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만큼은 어떤 타협이나 한 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섬사람들이 느끼기에 인자하지만 무서운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큰 소리로 외치시면 그 소리가 마을 전체에 우렁차게 울려났습니다. 추 전도사님은 흐트러짐이 없으신 여장부 같으셨습니다.
추 전도사님이 지난날을 회상하시면 늘 보람으로 여기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호물자도 없이 말도 성도와 주민의 힘으로 예배당을 건축한 것과 섬에 만연되어 있었던 미신과 우상숭배를 말도에서 완전히 종식시킨 일입니다. 그동안 마을 어귀에 지어놓고 제사를 드리던 영신당(우상의 집)은 폐허가 되고 배 위에서 당연히 행하는 선주들의 고사도 사라졌습니다. 대나무 잡고 점치던 사람은 집사가 되었습니다. 우상에 관련된 것이라면, 추 전도사님은 말도에서 아주 끝장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악한 영들과 싸워야만 했을까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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