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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두 권의 책”(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창조주)가 만드신 만물(자연, 피조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창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유명한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이탈리아의 천문학자로 망원경을 발명하여 천체 운동을 관찰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위대한 과학자)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다 한 권은 성경이고 다른 한 권은 자연책이다.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천국에 가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고, 자연은 우리들에게
■ 최명숙 목사(베데스다장애인선교회): 내가 만난 김용은 목사님목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40년 전 겨울이었지요? 장애인을 위한 행사에서 제가 발언을 하고 있을 때, 내빈석에서 풍채가 당당하신 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해 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후로 만날 때마다 제 등을 툭 치시면서 “힘으로 못하는 일을 말과 글로 해라!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늘 압축된 한 두 마디의 말씀으로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수필 형식의 신앙 칼럼을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선한 성결인 대회였습니다. 지난 주일(11월 5일 오후 3시 수원중앙교회(신성원목사)에서 있었던 경서지방회의 성결인 대회는 조촐하게 열였지만 내용과 결과는 참으로 신선하였습니다.지방회의 범위가 넓어서 많이 모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조촐하게 진행되었지만 수원중앙교회의 찬양단이 이끄는 찬양의 시간은 말씀의 집회전에 심령을 뜨겁게 달구는 영성과 열정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방회장님(김두봉목사)의 작금의 상황인식을 일깨우면서 성결인들이 다시 한번 회복과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자는 개회선언의 멘트는 시의 적절하였습니다.목
어느 수도원에서 한 늙은 수도사가 왔다는 소문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들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수도사를 보고 젊은 수도사들이 말했다. “노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나 닦으시오.” 이 수도원에서는 처음 부임한 수도사에게 그런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노수도사는 머리를 숙이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하고서, 곧장 식당으로 갔다. 노수도사는 불평하지 않고 한 달, 또 한 달, 그리고 또 한 달을 접시만 닦았다. 젊은 수도사들은 말없이 불평하지 않고 일하는 노수도사에게 멸시와 천대 그리고 구박을 쉬지 않았다.석
그 어느 시대보다 현대 사회는 개성과 다양성이 넘치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전통이 중시되었다면 오늘날 사회는 전통보다는 오히려 해체를 추구하는 시대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기존의 전통이나 가치관 그리고 질서에 대해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비판적 사고로 세계관을 바라보는 시대가 온 것이다.사회가 다양한 가치관으로 뒤섞여 있다 보니 사람들 모습들도 저마다 각자의 취향이나 개성을 추구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의 거리 신촌이나 강남을 가보면 정말 개성이 톡톡 튀는 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현대 사회를 각양
프랑스에서 이틀, 스위스에서 하루는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됩니다. 알프스산맥을 뚫은 17Km 터널을 지나서 이탈리아반도로 내려갑니다. 밀라노에서 여러 문화 유적들을 봅니다. 로마 전성기의 기운이 그대로 서렸습니다. 섬으로 이뤄진 베니스는 수로가 도로입니다. 그 바다 위에 어떻게 지었을까 싶게 떠 있는 웅장한 성당들은 여전히 장엄합니다. 각각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다 낡고 오래된 호텔들입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편리한 시설들을 갖추고 산다는 점을 다시 인식합니다. 피렌체를 들러 단테의 생가에서 잠시 멈춘 다음 마지막은 로마 외곽에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메디치상의 외국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상을 받는 순간이 아니라 작품을 완성한 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한강은 제주 4ㆍ3 사건을 다룬 소설《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했다. 워낙 힘들게 썼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작품 완성, 즉 자기완성의 기쁨을 그렇게 표현했다.사람들은 자기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다. 여성들이 결혼하거나 출산 후에도 여전히 자기완성을 위해 일하기를 원한다. 자기완성을 위해 취업을 하거나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이강엽’ 님의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출판:랜덤하우스)에서 일부를 옮겨 봅니다.옛날, 어떤 정승이 충청도의 한 시골에 내려왔다. 시골치고도 꽤 깊은 산골이어서 정승은 고사하고 판서 하나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럴 때야말로 물실호기(勿失好機)라고 생각한 발 빠른 양반들은 줄을 잘 서기 위해 정승을 모셔다가 후하게 대접하곤 했다. 그날도 한 양반이 정승을 정중히 초대했다. 구하기 어렵다는 숭어를 대접하며 지극정성을 쏟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중 정승이 가만 보니 이 사람이 맛없는 음식
에스더서에는 울부짖음이나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는 모습이 나타나지만(에 4 : 1-3, 16), 히브리어 본문에는 기도나 악한 조서를 취소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해 어떤 고통의 의식이 행해졌다는 언급조차 없다. 에스더서가 고의적으로 종교적 표현을 피하는 것은 저자가 유다주의(Judaism)를 종교로 보다는 민족주의로 이해하려는 비종교적 유다인이었기 때문이라 하기도 하고, 야웨 예배를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대단히 위험했던 시기에 썼기 때문에 종교적 요소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들
이 책은 ‘초록색과 붉은색의 야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환경을 보전할 수 없기에 대안으로 코뮤니즘을 제시한 책이다.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를 대신하여 코뮤니즘이 대안이 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가장 뜨거운 문제는 바로 기후 문제이다. 우리의 안락한 생활의 지속을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날로 늘어나고 지구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기온이 올라가면 인류는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심대한 기후 문제로 인해 저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바로 탈자본주의이다. 왜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