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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감상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두 작품 모두 청소년기를 공유한 친구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인이 되기까지 겪은 젊은 날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드라마는 친구 간에 복수극을 그렸고 영화는 아름다운 우정을 그렸다. 드라마는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립각으로 보여주었고 영화는 서로를 닮아가고 배려하고 용서하는 걸 보여주었다. 결말도 다르게 종결을 맺는다. 드라마는 처참한 폐해를 드러내고, 영화는 아름다운 영광으로 물들인다. 두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는 전혀 다른 감정에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8년 동안 독일을 통치하면서 위반과 비리가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고, 항상 겸손하며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재임 18년 동안 한결같이 새로운 패션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아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은 없는지요?” 그녀가 대답하기를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도우미가 있느냐는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기를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창조가 믿어져야 창조주가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진다)피부(skin)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욥10:11)피부는 우리가 어머니의 모태(母胎)에서 나올 때 입고 나온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옷은 부모로부터 선물로 받은 최고의 옷으로 우리는 평생 동안 이 옷을 입고 산다. 우리가 지금은 몸에 의복을 입고 살아가지만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지 않고 살았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그래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저자: 김학철, 출판사: 비아, 출판년도: 2022.동아시아 문명에서 ‘자연’(自然)은 매우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것에 반해 인위 혹은 인공은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무엇인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 반면 서양에서는 자연을 ‘야만’으로, ‘문명’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이해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과 문명의 발달할수록 인간의 정신은 ‘숲’을 향한다.고갱은 그의 그림《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 렇 통해 인간이 외면하고자 하는 근본적
청춘, 청년을 만나다8. 묵묵히 노를 젓는 [노군]이 되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희망에 끊어진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할 때 하나님과 함께 [아직]을 넘어 [오히려]를 외치는 자가 되겠습니다. 저를, 아니 우리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소서.”“고통을 넘어 본질을 세우자”1. 코로나 이후 펼쳐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염려와 고민 속에서 온갖 책들과 강연을 찾아가도 답이 안 보인다. 문제는 세상보다 교회가 더 걱정된다는 점이다. 코로나를 통해 한국교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VI. 역대기 상·하5. 내용 개요1) 개요역대기 상·하는 대체로 열왕기 상·하가 가지고 있는 역사를 포함하고 있으나 북왕국 이스라엘 역사는 절대 필요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빠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 남쪽 유다의 역사를 쓴 65장의 큰 역사책이다.전체적 구조는 아담에게서 시작한 족보가 사울에 계속되고(대상 6:∼10:6) 다시 다윗의 역사(10:14-29:30)로, 솔로몬의 역사(대하 1:1∼9:31)를 거쳐 유다의 여러 왕의 역사를 기록하고(대하 10:1∼36:21)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조서로 끝난다(대하
총알이 솜을 뚫지 못한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은 초가을에도 두꺼운 솜이불을 내리덮곤 했다. 인기척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빨치산들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새벽 4시쯤 됐을까. 밤새 한숨도 잠을 못 이룬 윤임례가 새벽 기도를 위해 예배실 방으로 들어섰다. 제단에 용채가 펼쳐 보곤 했던 성경을 올려놓고 그 제단 앞에 꿇어앉아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그때 문밖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짐, 아짐 계시오.” 떨리는 목소리였으나 이 새벽에 들이닥칠 빨치산들이 아니었으므로 윤임례는 대나무 살로 된 예배당 문고리를 젖혔다. 그리고
윤성근 님의 『探書(탐서)의 즐거움』(출판:모요사)에서 일부를 발췌해 보았습니다.최근 몇 년 사이 외국문학에 대한 번역 문제가 시끄럽다. 발단은 ‘이정서’라고 하는 새롭게 등장한 번역가의 도발이었다. 우리나라 프랑스 문학계의 귄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카뮈의 “이방인” 번역서에 오류가 많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오역한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지금껏 읽은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은 엉터리이며 독자들은 속은 것이다”라는 말은 문학계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방인"의 첫 문장인 “Aujoird'hui,
삼월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너무 빨라서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들릴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 봄 가운데 있으면서도 마냥 봄을 그리워하는 정처 없는 심정이다. 땅을 찾아서 들여다보는데, 청결하고(?) 살기 좋은(?) 도시일수록 땅은 이미 없다. 우리가 밟고 사는 땅은 사실 땅이 아니다. 콘크리트로 숨통을 완전히 막아버린 생명이 없는 땅이니까, 죽어버린 땅을 우리는 땅이려니 여기는 게다. 숨을 쉬고 있는 땅이라고는 자그마한 화단가나 나무 심어 있는 공원뿐, 마치 사랑하는 아이와 눈 맞춤 하듯 고개를 숙이고 바라보곤 한다. 잘 있니,
페터 비에르가 쓴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글 ‘삶의 격’을 읽었다. 삶의 격이 좀 있게 살고 싶은 나에게는 아주 매혹적인 제목이었다. 그러나 삶의 격이 쉽지 않듯이 글 역시 쉬 읽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무지한 독자인 나는 답을, 그것도 아주 간결한 답을 원하고 있었는데 답은 없고 과정이 기록된 글이었다. 과정뿐 아니라 결조차 많은 글이었다. 깊게 그리고 넓게 열린 책이라고나 할까, 예시된 사람들의 수도 많았고 그들의 존엄은 각자의 위치에서 매우 상이했다. “존엄은 인간관계를 통해 내가 변할 수도 있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