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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 (44)

기사승인 [622호] 2024.09.14  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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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세계 인구 80억 중 60%에 해당하는 48억이 아시아에 삽니다. 중국 14억, 인도 14억, 두 나라를 합치면 28억 이상입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일본이 다 1억 이상이 사는 나라입니다. 태국이나 우리나라도 7천만이나 됩니다. 서양에서 미국을 제외하면 1억 이상을 가진 나라가 잘 없습니다. 유럽이라기도 애매한 러시아만 1억이 넘는 정도이고, 독일 같은 경제 대국도 겨우 5천만 정도로 유럽을 다 합쳐야 7억4천만입니다.

동양과 유럽이 차지한 땅덩어리가 4배 이상 되는 것도 이유지만 결정적인 인구의 차이는 쌀과 밀로 나뉘는 주식(主食)의 인구 부양 능력이랍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가 같은 단위 면적당 최고로 10배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밀과 달리 2모작을 할 수 있는 경우를 포함한 계산으로 보더라도 대단한 차이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그 쌀을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뿌리고 거두는 단순 농경인 밀과 달리 노동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쌀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다산을 위해 조혼(早婚) 성행했고, 더욱 양질의 노동력인 남아 선호 문화가 발달했더라고 연구됩니다. 쌀농사 문화가 만든 명절 추석이 다가오니 설렙니다.

쌀은 세 종류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일부, 일본이 주로 먹는 쌀은 ‘자포니카’입니다. 밥을 지으면 끈기가 있지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전체 쌀 생산량으로 보면 겨우 15% 정도입니다. 동남아 사람들이 처음 한국에 와서 이 쌀을 먹을 때 소화가 잘되지 않아서 ‘활명수’를 많이 먹다가 그 쾌청한 맛에 인이 박일 정도 되었다니 재미집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인디카’라는 품종입니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재배하는 쌀이라는 이름이지요. 우리에게는 베트남 중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 ‘안남’에서 나는 쌀이라고 ‘안남미(安南米)’로 부릅니다. 끈기 없는 쌀입니다. 아시아 대부분이 이 쌀을 먹습니다. 동남아 여행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쌀입니다. 더러 먹을 기회가 있습니다. 그 부슬부슬한 밥은 곁들이는 반찬이랑 어우러지는 구수한 맛이 나름 특색있습니다. 우리 쌀과 달리 소화가 잘되니 먹고 돌아서면 배고파지는 밥이구요. 그 외에 극소수의 ‘자바니카’ 품종, 자바섬을 근간으로 하는 쌀이 있지만 ‘인디카’에 포함시키는 정도입니다.

그 외에 우리 기억에 멀어져가는 ‘통일미’가 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쌀 재배국가 어디서도 이루지 못한 품종 개량에 성공한 우리나라 쌀입니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던 1970년대 식량 자급을 위해 개발한 품종입니다.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교배가 어렵답니다. 우리 농진청에서 두 품종을 교배시켜 기어이 생산성 있는 쌀로 개발해 낸 작품입니다. 최고 40%까지 증산되어 배고픈 민족에게 고마운 쌀이었습니다. 강력한 정부 정책으로 재배시키고 정부에서 수매한 쌀이라서 ‘정부미’로 불렸습니다. 점점 저급 미질의 대명사로 쓰이는 말이 되었지만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해 냈습니다. 그러나 냉해와 도열병에 취약하고 미질이 떨어진다는 둥 여러 이유로 지금은 우리 땅에서 아예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다가스카르, 말라위, 말리 등 우리보다 더 더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우리 농업기술과 함께 전파되어 배고픈 저들에게 고마운 품종으로 확산 중이랍니다.

우리 주식인 쌀은 생명 양식인 복음과 결을 같이합니다. 좋은 주식이 인구 증대의 결정적 요소이듯 건강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절대 부족하던 식량 자급을 위한 노력이 점점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 이 나라에 지금은 다양한 양식들로 배고픈 사람 없습니다. 양식에 절박하지 않습니다. 먹을 게 수두룩한 게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는 지경입니다.

사상도 빼고, 철학도 빼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천박할 만큼 단순한 복음이 우리의 생명 양식입니다. 우리에게 생명 양식을 향한 절박함도 약해졌다고 발견합니다. 복음 아니면 살 수 없이 절박했던 전후세대,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복음 부흥으로 살아난 민족입니다. 등 따습고 배부른 우리에게 복음의 효용성이 통일미처럼 소외되는 현장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멀어진 한국산 통일미가 가난한 아프리카를 먹여 살리듯, 우리 땅의 복음이 다시 우리를 살리고, 온 세상 사람의 생명 양식되기를 도모해야 합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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