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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 (55)

기사승인 [633호] 2025.01.09  1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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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체의 신비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사람은 다양합니다. 섣불리 이해할 수 있다는 건 큰 착각입니다. 어떤 가수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몰라도 그의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다들 압니다. 내가 평생 나의 주인으로 살면서 도통 모르는 게 자신입니다. 언제 낙심하는지, 언제 희망을 품는지, 어떤 상황에 좋은 마음이 되며, 어떨 때 슬픔에 사로잡히는지 개인차가 있지만 자신이 종잡을 수 없습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체중을 5kg 정도 줄였습니다. 허리둘레도 목표한 대로 2인치쯤 줄였으니 성공적입니다. 제법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봄부터 초겨울까지는 배산을 뛰어올랐지요. 겨우 해발 80m짜리 야산이지만 계단으로 뛰어오르는 건 제법 격한 운동입니다. 겨울에 들어서는 실내 헬스클럽으로 다닙니다. ‘러닝 머신’ 등판 각도를 15도쯤 올려놓으면 제법 가파른 길입니다. 여하튼 땀 나게 뜁니다.

몸이 움직이는 동안 뭐든지 듣습니다. 책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을 강의로, 설교로 듣습니다. 내용 있는 강의를 들으면 공부는 되는데 피곤이 훨씬 가중됩니다. 음악 듣는 건 좀 낫습니다. 장엄한 클래식이나 경쾌한 찬양을 메들리로 들으면 힘든 거 많이 상쇄됩니다.

문득 행진곡 생각이 났습니다.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행진곡이 있군요. 베르디의 개선 행진곡,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 쥬페의 경기병 서곡,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 요한 스트라우스가 쓴 라데츠키 행진곡은 빈필의 신년 음악회 마지막 곡으로 언제나 힘찬 선율입니다. 스위스군 행진곡,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비제의 카르멘 서곡도 행진곡으로 힘찹니다. 제목을 몰라도 들어보면 모두 익숙한 멜로디입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행진곡이 있습니다. 군에 갔을 때 부르던 군가는 더없이 힘찹니다.

이어폰을 쓰고 행진곡을 듣습니다. 더러는 군가도 듣습니다. 뛰는 두 다리에 힘이 불끈 돋습니다. 전진하는 군인처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합니다. 피곤은 적군처럼 쓰러집니다. 길고,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 훌쩍 지납니다. 신기합니다.

글쎄, 사람이 그렇다니까요. 똑같은 운동을 해도 지루하고 난해한 강의를 들으면 더 힘이 듭니다. 음악, 그것도 경쾌를 넘어서 아예 행진곡이나 군가를 들으면 온몸에 힘이 납니다.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주일 지나면서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지치지요. 돼지고기를 삶아 넉넉히 먹습니다. 제 체질에는 그게 맞는지 월요일 아침 기운지게 일어납니다. 예배당을 지을 때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지요. 회복이 더디면 무안까지 내려가서 비싼 뻘낙지를 먹습니다. 그건 아주 고급 보양식입니다. 착한 몸이 금세 회복세로 돕니다. 급하면 박카스라도 들이키구요.

귀로 듣는 음악뿐 아니라 입으로 먹는 음식도 신체 기능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주님께서도 몸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중요함을 설파하셨습니다.

올 한 해, 맛있는 음식들 많이 드시고, 좋은 소리도 많이 들으면 좋겠어요. 좋은 뉴스들이 많은 한 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소식, 생명의 복음을 필수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들음으로 영적 활력으로 충전, 충만하시기를 마음 모아 축복합니다.

신년 벽두부터 우리는 많은 사회적 과제들을 만납니다. 대규모로 떼를 지어 결집 된 의견들을 쏟아냅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저로서는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저질러지는 관제 폭력, 민간 폭력을 경험했지요. 지금은 제법 성숙한 시민 사회여서 어느 폭력도 발생하지 않는 점은 다행입니다.

우리 사회는 해결할 과제들을 많이 안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부터 빈번한 사회적 갈등과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도 손 쓸 수 없는 난제입니다. 공동체적 대안이 필요한 일이지만 공동체가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해 실효성은 떨어집니다. 차라리 한 사람의 변화에 더 치중하는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한 사람은 그 자체로 신비합니다. 음악 선율이 주는 역동성이나 음식을 통해 공급받는 영양소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듯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섭취함으로 변화되는 개인들이 모이고 모여 역동적인 한국 사회, 교회, 가정들을 이루어가는 한 해를 소망합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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