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마 길보른과 전후 한국교회의 재건”
박명수 박사(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
Ⅰ. 엘마 길보른과 선교의 준비
1. 엘마 길보른의 가정적 배경
엘마 길보른의 할아버지 Ernest L. 길보른은 동양선교회의 창립자이자 카우만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초기 동양선교회의 사역은 영어권에서 카우만과 길보른의 사역이라고 알려졌다. 동양선교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꿈, 어느 날 하나님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중국에 이르는 거대한 다리를 보여 주셨다. 이 꿈을 꾼 사람이 바로 에른스트 길보른이었다. 카우만이 동양선교회의 외적인 대표라면 이 선교단체를 내실있게 실질적으로 운영한 사람은 에른스트 길보른이었다. 카우만 부인은 이 두 사람을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친구라고 말했다.
에른스트 길보른의 사역은 그의 아들 Edwin L(Bud). 길보른으로 이어진다. 버드 길보른은 미국의 급진파 성결운동의 산실인 하나님의 성서학원에서 공부했다. 사실 하나님의 성서학원은 동양선교회의 산실과도 같은 장소이다. 카우만과 길보른도 이곳에서 공부했고, 하젤 윌리암스(Hazel william)를 만났고 이들은 결혼했다. 하젤 윌리암스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성서학원의 관리 책임자로서 신실한 성결파 신자였다. 버드 길보른 부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동양선교회의 선교사가 되었다. 이들은 192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사역하다가 1920년대 중반 이후 중국으로 가서 동양선교회의 중국사역을 개척했다. 버드 길보른은 카우만, 길보른에 이어서 3대 총리였던 카우만 부인을 도와 동양선교회의 수석 부총리로서 동양선교회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특별히 카우만 부인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동양선교회의 아시아 사역은 주로 버드 길보른이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버드 길보른 부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 번째가 Edwin Williams, 다음이 쌍둥이인 Ernest Juji와 Elmer였다. 이들의 세 이름은 동양선교회의 창립자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Edwin Williams의 에드윈은 아버지 에드윈 길보른과 윌리암스는 그의 어머니 전통에서 유래했고 Ernest(Ernie) Juji의 에른스트는 할아버지 이름에서, 주지는 일본 성결교회의 지도자 나카다 쥬지에서, Elmer는 Charles Elmer Cowman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이들 가문이 얼마나 동양선교회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들 삼 형제는 다 같이 동양선교회의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버드 길보른 부부는 이들을 동양선교회의 전통에 따라서 키우려고 했다. 큰 아들 에드윈은 특별히 공부를 잘해서 미국의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공부하게 했고, 바로 이어서 부모를 따라서 하나님의 성서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미 사립학교에서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경험한 에드윈은 하나님의 성서학원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삶을 견딜 수가 없었다. 에드윈 길보른은 결국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서 상하이의 유명한 성요한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성결파 학교인 에즈베리 대학에 입학하였다. 하나님의 성서학원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강조하는 급진파 성결운동에 속하지만, 에즈베리는 감리교 내에서 중생과 성결을 강조하는 전통적 성결운동에 속하는 학교였다. 그 후 에즈베리는 길보른의 아들들의 모교가 되었고, 대부분의 동양선교회 선교사들도 에즈베리에서 배출되었다.
동양선교회와 에즈베리와의 관계는 정남수 때문이었다. 에즈베리 학생들은 전(全) 세계 음악전도 여행을 계획하였고, 이들은 한국에서 자신들의 선배인 정남수의 도움으로 동양선교회와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에즈베리 학생들은 동양선교회의 선교사가 되었다. 이런 것들이 인연이 되어서 동양선교회와 에즈베리는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동양선교회의 중요 멤버인 길보른의 자녀들이 에즈베리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다.
에드윈 길보른과 그의 동생들이 에즈베리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첫째, 동양선교회는 초기의 급진성결운동에서 완화된 입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길보른 가문은 세월이 흐르면서 초기의 엄격한 성결파에서 약간은 부드러운 초기의 엄격한 성결파에서 약간은 부드러운 입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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