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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43)

기사승인 [621호] 2024.08.29  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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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새 예배당을 지으려고 산 땅에 올망졸망 작은 텃밭들이 있었습니다. 빈 땅에 고구마 몇 뿌리, 들깨 모종, 마늘, 콩 몇 포기를 심어 기릅니다. 엉성하게 자란 상추 대궁도 본 기억이 있구요. 주인은 가까운 마을 주민입니다. 노인들이구요. 그 텃밭을 갈아엎어야 길을 내고 예배당을 짓겠는데 손바닥만 한 텃밭을 호작질로 가꿔오신 주인들은 난색입니다. 주인 없는 땅으로 알았더라고 우겨댑니다. 법적으로야 정확한 우리 땅이고 그분들은 명백한 불법 경작이지만 기르는 식물을 갈아엎어야 하는 가혹함 때문에 기어이 돈 얼마를 건네 드리고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홍역을 치르고도 그분들은 거기서 옮겨 도로 쪽 좁고 긴 공터에 또 뭔가를 심어 댑니다. 인근에 자기 땅을 갖고 계신 장로님이 ‘차라리 내 땅에 심어 잡수셔요’ 할 만큼 심어 기르는 일에 집요했습니다. 그 집요함이 부당했지만, 땅에 뭐든 심어야 사는 오래된 습관은 윤리적 판단을 넘어서는 본성으로 와 닿았습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는 주민 70%가 3, 40대랍니다. 그런데 단지 안에 개인이 텃밭으로 가꿀 땅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화단 같은 밭을 두어 평 될까 싶은 넓이로 칸 막아 분양합니다.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텃밭에 올망졸망 방울토마토, 가지, 오이 등속을 심었습니다. 재물 획득이기보다는 재미로 하는 농사겠지요. 해마다 그거 한 칸 차지하려는 추첨에 경쟁력이 만만치 않답니다. 한 해 기회를 얻었던 세대는 다음 해에는 아예 제외할 만큼요. 전혀 농사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도 땅에 무엇인가 심어서 열매를 거두는 일에 본능적인 가치를 둔다는 발견입니다. 농사꾼으로 자란 나는 그 소꿉놀이 같은 텃밭을 “농장”이라고 이름을 달아 놓은 걸 보면서 헛웃음 짓습니다.

피를 못 속인다지요. 한 가정, 가계의 특징을 이어 내리는 말만은 아닙니다. 긴 역사 동안 좁은 땅, 짧은 햇볕 아래 농투사니로 살아온 우리 민족은 땅만 보면 무언가를 심어야 직성이 풀리는 피를 나눠 가졌습니다. 너른 땅 차지하고 사시사철 농사지을 수 있는 나라, 일테면 태국 같은 나라의 여유로움에 비하면 조바심으로 보입니다. 그 경작 본성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하신 명령에 닿습니다. 땅을 닦달하여 뭔가를 얻어내는 파종 본능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본성으로 해석해 냅니다.

주변에 주인 없이 빈 땅들이 더러 있습니다. 도로 부지나 하천 부지에 붙은 자투리땅이 대표적입니다. 밭이랄 것도 없이 긴 이랑을 만들어 감자, 고구마, 콩, 옥수수 등속을 기릅니다. 새벽에 그 텃밭 가꾸는 분들을 만납니다.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일구는 그 노동은 생산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취미생활로 보입니다. 생동감이 있거든요. 정갈한 밭이랑, 질서 있게 자라는 작물들이 보기도 좋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작물은 농부 발소리 듣고 자란다.’ 그래요. 부지런한 손길로 흙을 다루어 제법 쏠쏠한 수확을 얻어냅니다. 이른 여름에 감자를 한 가마니 넘게 캐던데요. 그 수확에 축하를 전했더니 “한 바가지 담아가실래요?” 넉넉한 인심으로 돌아옵니다. 땅의 넉넉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닌 예도 있습니다. 밭이라고 터 잡아 놓았지만, 온통 잡초만 무성합니다. 고추 심었던 흔적으로 얼기설기 세워 놓은 지주대와 비닐 끈이 뒤엉킨 채 잡초 속에서 사람 손길 기다리는 땅도 있습니다. 아예 밭으로 개간하지 않은 땅 보다 훨씬 흉물스럽습니다. 사람 손길이란 게 그래요. 한 번 닿으면 끝까지 다듬어 가야지, 하다 말면 폐허 되는 거거든요.

주님은 사람 마음을 밭에 견주셨어요. 잘 가꿔야 합니다. 가꾸다 말면 흉물스러워지는 모습을 “전보다 악한 귀신 일곱”(마12:45)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하다 말다 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텃밭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마음 밭들을 잘 가꿔 가는 게 주님 가르침일 거예요. 날 새면 뒷짐 지고 텃밭을 서성거리는 부지런한 농부처럼 복음을 씨 뿌릴 텃밭들을 개간합시다. 노동으로 말고, 그 일을 소명 삼아 부지런한 농부 발걸음으로 우리의 텃밭들을 돌아봅시다. 풍성한 영혼 구원의 열매들을 위해 집중하는 가을을 맞읍시다. 긴 사설, 모아들면 모두 나서서 “가을 전도하자”라는 소리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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