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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36)

기사승인 [614호] 2024.05.22  21: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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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밥이 아니다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교단 총회 날짜가 다가옵니다. 맡은 일이 있어 더러 서울 나들이에 나섭니다. 운전하기는 버거워 열차를 탑니다. 한나절이면 후다닥 다녀오니 편리한 세상입니다. 촌사람 서울 나들이에 재밌는 경험들이 많습니다. 올해로 65세 되니 전철을 공짜로 타는 건 그중 흥미롭습니다. 흥미롭다는 말은 딱히 즐겁지만은 않다는 마음을 에두르는 표현입니다. 노약자석 앞에는 서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려 들면 어쩔까 싶지요. 전철 차창을 거울삼아 자주 건너다봅니다. 얼마나 촌스러운지, 얼마나 늙어 보이는지 점검하느라구요. 내 방 거울에는 그렇지 않더니 서울서 건너다보니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염색도 새로 해야겠습니다.

일 마치고 내려올 때는 세 시 차를 탔습니다. 꼬박 한 시간, 쉬운 책으로 한 권 읽기 좋은 시간입니다. 헐레벌떡 달려와 털썩 옆자리에 앉은 여인은 연신 전화를 주고받습니다. 복장도 그러려니와 국회가 어쩌고 하는 통화 내용을 엿들으니 틀림없이 국회에 출장 다녀오는 공무원입니다. 눈은 책에 닿았지만 귀는 여인의 전화에 열려있습니다. 일하는 부서도 직위도 대충 알게 됩니다. 제법 언성 사나운 통화를 마친 여인이 내게 미안한 마음을 엿보이고는 나들이로 지친 몸을 털썩 의자에 기대 편한 자세로 고쳐 앉습니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집에 있는 아이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처음은 아닌 모양입니다. “아까 말했잖아, 엄마 오늘 출장이라 늦어” 엄마는 전화기를 두 손으로 막아 들고 죄지은 사람처럼 소곤거립니다. 집으로 곧장 퇴근이 아닙니다. 다시 청사에 들러 업무를 마무리 지어야 할 상황이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립니다. 전화로 말하는 단어를 주어 모으니, 학원, 마트, 전자레인지, 냉장고, 밥 등입니다. 기억대로 되살려 놓으면, 학원 마치고 들어갈 때, 마트 들러서 먹을 거 사고, 집 냉장고에 든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고 게임은 한 시간만 하라는 내용입니다. 엄마는 더 늦을 모양입니다. 전화기 너머 아이는 짜증에 절었습니다. “끊어 전화 받아야 돼!” 엄마는 연신 또 다른 전화들을 주고받습니다. 아직은 일과 시간이니까요. 그래도 아이의 전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업무 전화에 우선순위를 빼앗기는 아이 전화는 모두 불퉁거리는 소리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는 오송역에서 내리느라 부산합니다. 세종 청사에서 가까운 역이거든요. 나도 30년 넘게 정부 청사에 드나들며 공무원들의 삶을 엿봅니다. 정부 청사가 과천에서 세종으로 내려온 뒤, 여전히 청와대나 국회가 서울에 있는 터라 서울에 처리할 일들이 많습니다. 시중에는 공무원 절반이 열차 안에 있다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아직도 육아와 가사를 더 많이 감당해야 하는 여성 공무원들의 애로가 많습니다. 나는 읽던 책에서 눈길을 떼, 또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렸습니다. “과장님, 애가 밥 못 먹어 배고픈 게 아니라 엄마 고픈 거 아시지?” 전화로 떠들어 댄 걸 용서한다는 표정까지 섞어 건넨 말이니 곱게 닿습니다. 여인은 살풋 눈인사를 남기고 늦은 엄마 노릇 하러 총총 떠났습니다.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혹은 배달 음식이 엄마 노릇하는 세상입니다. 많이 낳지도 않는 세상이니 겨우 하나나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좋다’ 하셨지요. 다만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하셨습니다. 유독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짝을 만들어 더불어 살도록 가정을 만들어 주신 거랍니다. 그 함께 있어야 할 가정에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애처롭습니다. 아웅다웅 더불어 커 갈 누이도, 동생도 없이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여서 더 애달파 보입니다. 아이의 애달픔을 알면서도 기어이 ‘자기 구현’에 나서야 하는 엄마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합니다. 젊은 과장이니 행정고시를 치렀을 겁니다. 그 공부에 쫓겨 한둘 더 낳아 동무해 주지 못한 형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걸요.

홀로 있어 엄마가 그리운 그 집 아이뿐 아니라 우리도 늘 배고프기보다는 사람이 고프지요. 살가운 눈빛을 가진 사람, 따듯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 다정한 말로 다가와 주는 사람이 다 그립습니다.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가는 엄마처럼 존중과 따듯함으로 그리운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에 먼저 다가서는 거, 참 중요한 가치라고 여깁니다.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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