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특별한 사순절 기도 / 프리랜서 작가 김현희

기사승인 [609호] 2024.03.21  16:42:13

공유
default_news_ad2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

(마태복음 10:30~42)

첫번째 목양지에서 사역할때 큰별이는 초등1학년, 작은별이는 5세, 막둥별이는 4세였습니다.

담임교역자로 부임하고 새벽기도를 위하여 나간 후, 집에 엄마가 없는 것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세아이중 한명이 깨서 울면 남은 두명도 함께 깨서 울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큰별이에게 당부했습니다.

“동생들이 잠에서 깨어 울면 오빠가 토닥토닥 재워야 해 동생들과 함께 오빠가 울면안되지”

그렇게 엄마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 조차도 두려워하는 영유아기부터 유치부까지 미취학 아동들의 두려움은 엄마의 부재일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심방을 나와 있으면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언제오세요~?”

그렇게 엄마를 찾던 아이들이 언제부턴가 저희들끼리 잘 놀고 엄마를 찾던 전화가 뜸 해 졌습니다.

큰별이는 착한 오빠였습니다.

연년생인 어린 여동생 둘을 살뜰히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덕분에 첫 목양지에서 시간을 감사하게 보냈습니다.

 

두번째 목양지에서 큰별이는 고등학생, 작은별이는 중학생, 막둥별이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두려움의 대상이 많아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요.

울 별셋도 '아주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이라는 질풍노도의 뜻처럼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격동적인 변화를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반항, 일탈 등의 행동을 하는 시기라고 하는데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지요.

현재의 목양지에서 울 별셋은 모두 청년들이 되어 집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것인지도 모르게 조금은 우울할 것 같은 시간을 사역덕분에 무사히 보냈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두려움은 취업과 연애, 결혼 더 큰 두려움으로 매일 전투를 치르는 군인처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인정받고 성공을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낳고 기르며 자신들의 삶의 역사를 써 나갈 것입니다.

중년기와 노년기의 두려움은 ‘건강’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죽음 그 이상의 두려움이 있을까요~?

요즘은 백세시대입니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강사분이 앞으로 자신의 기대수명을 정하고 남은 날짜를 기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수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공감이 되는 이유는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데 오랜 시간 삶을 영위하는 것이 고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 그 은혜로 선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의 영혼을 죽일 수 없으며 성도의 영혼에 해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생명이신 하나님과 그의 사랑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죽기 때문입니다.

재난과 고통과 핍박이 우리를 온 세상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으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지 못하게도, 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살게 하시는 은혜가운데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잘 아십니까 ~?’

(마태복음 11:1~31)

저는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청소년기부터 반주자로 봉사하다가 사역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어쩌다가 사역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척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때면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부르짖으며 흔들릴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님곁에 끝까지 남아있는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제자 요한만 예수님의 유언으로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기 위하여 사명을 다하고 말년에 밧모섬으로 유배를 간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지요.

성경의 진리나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만 깨닫고 배울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집니다.

그들은 성실하고 인내하며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을 택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시대의 모습을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경솔하고 무책임하고 변덕스러운 모습이 현대인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좋은것, 더 편한것을 추구합니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직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고, 말씀으로 깨닫는 지혜는 진리를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를 깨닫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프리랜서 작가 김현희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