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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시문학(13)

기사승인 [613호] 2024.05.09  0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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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식과 구원의 메타포

시인, 신학박사, 천광교회 담임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직유법인 ‘여호와 하나님은 ~와 같다’는 표현법을 쓴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하여 확신의 결여로 연결되는 표현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성을 표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상대화할 수 없었다.

이 신앙의 표현으로써 은유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하나님에 대한 표현은 움직일 수 없는, 변개될 수 없는 신앙의 고백적 차원에서 온 확신이기 때문에 직유법이 아닌 은유법을 사용한 것이다.

시적 화자나 대적에 대하여 주로 직유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인간들의 상황이 가진 견고함은 절대적 견고함이 아니라 상대적 견고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황은 때를 따라 변하기 때문에 ‘나는~이다’와 ‘대적은~이다’라는 표현도 하나님께 사용되는 절대성의 표현이 되지 못하고 상대적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직유인 ‘~와 같다’는 상대적 표현법이 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과 제한성을 표현하기 위한 성서의 표현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E. 그림언어

히브리어는 매우 그림 같은 언어이다. 히브리어는 묘한 뉘앙스를 안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석적 언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 예로, 히브리어는 단지 두 개의 시제만을 가지고 있다. 대개 미완료된 동작은 미래시제를 사용하고 완료된 동작은 과거시제를 사용한다. 대체적으로 히브리어 구문과 문법은 어미가 변화하는 라틴어나 헬라어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히브리어의 특징은 ‘붓으로 대담하게 언어그림을 칠하는 것’이다. 성서를 기록한 히브리인들은 전체 그림을 그릴 때 세밀한 부분이나 조화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눈으로 보는 것을 그렸지, 마음으로 사색하는 것을 그리지 않았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결코 논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나님은 철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오로지 기능적으로 이해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식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철저히 반석이시며, 바위시며, 산성이시며, 피난처이신 것이다. 그분은 행동하시는 분이며, 인격적이며 활동적인 분이시다.

시문학과 탄식시에 나타난 시인들의 표현법은 회화적이지만 때로는 세속적이고, 신랄하며, 직설적이다. 구약성서에서 “땅”이라는 단어는 “하늘”이라는 말보다 다섯 배 이상 사용되고 있다. 이는 히브리인들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구약에서 우리는 그림 같은 언어들을 통해 솔직한 인간성과 개방성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이 성서의 언어를 그림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생생한 비유적 표현들은 히브리인들이 자연을 가까이하며 살았음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시문학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한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자연을 숭배한다든지 신격화하는 일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았다.

탄식시에서 나오는 그림 같은 언어는 이런 히브리인들의 언어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F. 블록 로직(Block Logic)

블록 로직은 히브리인들의 사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서양인, 즉 헬라인들은 흔히 전제에서 시작하여 꽉 짜여 있는 단계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리 방법에 익숙했다. 이 논리 단계들은 서로 다음 단계들과 밀착되어 있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결론은 대개가 하나의 관점, 즉 실재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제한되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히브리인들은 보통 블록 로직을 사용했다. 즉, 개념들은 독립적인 단위 또는 사상의 블록 속에서 표현되었다. 이 블록들은 분명하게 이성적이거나 조화를 이루는 어떤 형태 속에서 항상 서로 꼭 맞을 필요는 없었다. 특히 한 블록이 진리에 대하여 인간적인 관점을 표현하고 다른 블록이 신적인 것을 표현할 때 더욱 그랬다. 이러한 사고방법은 역설, 모순, 또는 분명한 상반의 특성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한 블록은 다른 블록에 대하여 긴장 관계를 이룬다. 두 블록은 흔히 비논리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사상의 양극성 또는 변증법이 대개 블록 로직의 특징이다.

시문학을 이해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의 하나가 바로 상반된 논리가 전개될 때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법이 블록으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인데, 이는 서양의 논리체계 속에서 훈련된 현대인에게는 이해 불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들은 이를 ‘감동’으로 받아들인다. 동전의 양면 같지만 한 몸체이며, 역설 같은데 어떤 지향점이 있고,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이 다른데 한 주제 아래 어울려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은 바로 히브리인과 시인들이며, 이는 그들이 성서를 기록하는 데 ‘사용될 만한’ 민족이었다는 뜻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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