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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35)

기사승인 [613호] 2024.05.09  07: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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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증인입니다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신학대학교 총동문회를 강원도에서 엽니다. 우리 지방회 목사님이 거기서 회장이 되는 까닭에 참석해서 축하해야 합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강원도 구경입니다. 마침 새잎 돋는 4월이어서 환상적인 산하를 둘러봅니다. 4월만큼 고운 각시가 동행해 주니 신바람도 납니다. 늘 내게 불만인 지나친 속도를 좀 낮춰 소심 행보로 맞춰 줍니다.

오대산 자락을 가로지르는 진고개를 넘습니다. 대관령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더 고즈넉한 강원도를 만나는 길입니다. 올라섰다 내리 달리면 바로 동해랑 닿는 이 고갯길은 군대 있을 때 더러 넘던 길이고 좋은 동무와 아이들이 한 해 여름, 휴가로 넘어 고운 추억이 서린 길이지요. 길을 넓게 단장하여 편해졌습니다. 좌우로 강원도 나무들은 여전합니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도 여전히 싱그럽고 그에 기대 사는 봄꽃들도 여전히 곱습니다.

새로 동문회장에 된 목사님은 20년을 군목으로 일하셨습니다. 강원도, 그것도 설악산 근처를 잘 압니다. 그분 소개로 발견한 “필례 약수길”을 천천히 더텄습니다. 좁은 땅 한반도 안에서도 남북의 계절 차이가 역력합니다. 전라도 땅의 진달래는 피었다 진 지 오래입니다. 나무들은 이미 초록으로 갈아입고 녹음으로 내달리는 중이니 충분히 봄을 지난 계절이지요. 강원도, 그것도 설악산 어름의 높은 봉우리들은 여태도 메마른 가지들이 을씨년스럽고, 양지바른 능선에 겨우 진달래가 한창입니다. 물론 수종(樹種)을 따라 연초록 잎새를 낸 나무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덕분에 고산준령의 삭풍 속에서도 아련한 봄기운으로 감미로운 여정이었습니다.

골짜기를 돌 때마다 사진을 찍어 댑니다. 삐죽 솟은 기암절벽들이 우선이고, 겨우 새잎 내는 활엽수들이 차선입니다. 멀리 동해까지 겹쳐 뻗은 능선들도 놓치기 아까운 경치입니다. 내가 사는 전라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장관들입니다. 기술적으로는 몸의 한 부분처럼 친숙한 스마트폰 덕분입니다. 사진을 찍어 대는 건 내가 본 것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실물로 보여 주어 나의 여정이 풍요로웠음을 증명하려는 동기입니다. 동해의 광활함과 그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의 장관도 꼭 본대로 전해주고 싶어서 연신 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이 땅의 4월을 연출하시는 하나님 솜씨를 사람이 만든 사진으로 가두는 건 애당초 어불성설입니다. 그리 전해질 장엄함이 아닌 것으로 발견하니 금세 소심해집니다. 결국 본 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는 의도는 늘 아쉬움과 절박함으로 하소연을 동반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전해주려는 마음으로 숨이 밭으면 결론 짓는 말이 따로 있습니다. “바빠도 4월 가기 전에 동해에 한번 가봐, 설악에도 올라 보고!” 동무들을 향해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나는 4월의 강원도에 다녀온 증인입니다. 그 한나절의 경험으로도 내린천의 물살만큼이나 전하고 싶은 사연이 수다스럽습니다. 그런데 내 경험은 강원도만이 아닙니다. 나는 예수님을 경험했습니다. 한나절의 경험이 아닙니다. 평생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할 말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용서는 당신 몫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내 회개보다 먼저 이루신 당신의 용서를 회개로 담아 가라 하셨습니다. 내 구불구불한 인격을 어루만져 골짜기는 메워 주시고 봉우리는 엄지손가락 치켜드는 격려로 세워 주셨습니다. 분노로 일렁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머리에 인 물동이가 출렁일 때 담그던 똬리처럼 분노를 스며들게 해 주셔서 살인을 면할 만큼이었습니다. 지쳐 포기 앞에 섰을 때, 그분을 향해 나직이 찬미를 읊조리면 그분은 마음의 영양제로 핏속에 스며오셨습니다.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겁니다. 지금도 여상하여 내면의 왜곡과 오염으로 자맥질하는 내게까지 늘 다정히 찾아와 만나 주십니다. 달아날 수도 없는, 구태여 달아날 필요도 없는 그분 앞에 있습니다.

세상 우여곡절을 겪는 모든 이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이 동해 일출 장관이나 설악 준령을 사진에 담아 전하는 것처럼 미흡합니다. “이 목사, 나 만나서 교회 오라고만 안 하면 좋은 친군데 말이야!”라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기어이 교회 와서 예수님 만나 보라고, 나처럼 그분을 경험해 보라고 간곡한 결어를 또 되뇌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강원도뿐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강원도의 내린천 물소리처럼, 예수님 담은 수다를 쏟아내는 사연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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