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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로 읽는 구약성경 메시지 <10>

기사승인 [613호] 2024.05.09  08: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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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 지파를 택하신 이유’

이성훈 목사(임마누엘교회)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에게 다른 지파와는 다른 임무를 맡겨 주셨는데, 그것은 성막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막과 다른 지파 사이에 진을 쳤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제사장 이외의 사람들(히. 자르)이 성막에 가까이함으로써 죽임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였던 것입니다. 성막에서 지파가 진을 친 자리까지의 거리가 1km 정도인데, 레위지파가 그사이에 진을 침으로써 그들이 서로 왕래하다가 자칫 성막을 범하게 되는 우를 범하는 것을 방지하는 완충 역할을 하였습니다. [도표참조]

이뿐 아니라 레위지파는 성막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고핫 자손은 성막의 기구들을 맡았고, 게르손 자손은 천막에 관계된 것들을 맡았으며,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기둥과 널판 종류의 것들을 맡아서 운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다른 지파가 아닌 레위지파를 택하셔서 성막에 관계된 일을 하게 하셨을까요? 사실 레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막과 관계된 일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열두 아들에게 예언적인 유언을 할 때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레위는 아버지 야곱에게 저주섞인 예언을 들었습니다. 이는 시므온과 레위 두 사람이 자신의 누이 디나가 세겜에서 하몰의 아들 세겜으로부터 몹쓸 짓을 당했을 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세겜에 있는 남자들을 모두 살육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죽기 전 아마도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시므온과 레위를 흩을 것이라는 예언적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피상적으로 볼 때 레위 지파는 성막과 관계된 일이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출애굽기는 레위의 후손이 성막과 관계된 일에 택함을 받았던 이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를 견디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을 때, 레위지파는 모세의 편에 서서 우상숭배자 3,000명의 사람들을 처단하였기 때문입니다(출 32:29). 그러나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의 원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수기 3장 12절은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원문에는 ‘아니(내가) 히네(보십시오) 라카흐티(취했다 내가)’ 라고 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실 서두에 ‘아니’(내가)라고 하는 말은 “취했다 내가”는 말이 있는 이상 불필요합니다. 또한 주어 ‘내가’가 이미 나와 있어서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사용함으로써 ‘선택’하고 ‘취한’ 분이 하나님임을 매우 강조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히네’ (‘보십시오’) 라고 하는 말도 삽입함으로써 강조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풍성하게 의역한다면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내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바로 내가 바로 내가 내가 택한 것입니다. 내가 레위를 택했고 내가 그들로하여금 내 성막을 맡겼습니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우연히 진행되어지는 것 같아보입니다. 거두어지는 열매가 내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을 꾸는 요셉, 유혹을 뿌리친 사람, 형들을 용서했던 사람으로만 요셉만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시 105편 17편은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라고 말함으로써 이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돌아가는 연자맷돌을 보며 멈추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연자맷돌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곱게 갈려서 나오는 곡식가루는 연자맷돌이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십시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고 현재 내 모습 이대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경험하십시오. 그분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나를 품어주시고 붙잡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택하신 그 은혜로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돌아가고 있음을 잊고 지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자맷돌은 분명히 돌아갑니다. 비록 천천히 돌아가기 때문에 돌아가는지 느끼지 못할 때가 있으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것을 보면 연자맷돌은 분명히 돌아갑니다. 이는 역사를 일컬어 History 즉 ‘그 분의 이야기 (his story)’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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