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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9)

기사승인 [607호] 2024.02.29  08: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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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운 이강인 선수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축구, 아시안게임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웠습니다. 외신이 먼저 보도한 우리 대표팀의 불화설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축구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한 국민들은 아연실색했지요. 이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강인의 인성이 연일 도마 위에 오릅니다. 하극상, 천방지축, 안하무인 등이 그를 비난하는 말들입니다. 그가 살아온 흔적마다 그의 그릇된 인성을 증명할 만한 증언들이나 짧은 영상들이 각종의 매체들을 타고 파도처럼 퍼졌습니다. 특히 신사 품격을 갖춘 또 다른 축구 천재 손흥민과 대립 구조에서 그는 거의 패륜아로 전락 됩니다. 그 사회적 압박에 눌려 자칫 천재적인 축구 스타 하나를 잃으면 어쩌죠?. 축구는 썩 잘하던데...

두 축구 스타는 성장 환경이 다릅니다. 이강인은 일찍 축구라는 특별한 영역에서 천재성을 인정받아 6세 전후로 축구에 전념합니다. 일찍 해외로 나가 오직 축구에 매달린 청춘이니 부모님 품을 일찍 떠났겠지요?.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는 것은 어린 나이에 가정에서 부모님들께 배우는 덕성입니다. 그 나이에 이강인은 인성을 잘 배양할 기회보다는 천재성을 개발하는 데 최선을 다했을 것이지요. 결과 유럽 정상 팀에서 그에 걸맞은 위치를 차지했고 여전히 천재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축구 경기는 늘 상대를 이겨야 하는 치열한 경쟁입니다. 그런 문화에서 나 아닌 상대는 늘 적입니다. 적을 향해서는 거칠고 공격적인 성향이 우위를 점한다는 생존 비법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게 체화(體化)되었습니다. 자연 남을 배려하는 기술은 못 익힌 것이지요. 그에게 축구는 윤리가 아닙니다. 쉽게 윤리, 너무 직설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사람 아끼는 마음으로 비난의 손가락질을 잠시 유보해 둡시다. 

손흥민은 축구선수였던 아버지 슬하에서 축구를 배웁니다. 엄격한 아버지 손정웅은 그에게 기본기, 예절 등을 집중해서 가르쳤노라고 회고합니다. 엄청난 노력파라지요?. 자연 실력뿐 아니라 기본기에 체력, 신사적인 스포츠맨십을 갖춘 시대의 영웅으로 등장했지요. 다시 보아도 멋집니다. 동양인을 얕잡아 보는 유럽 무대에서 숱한 괄시와 조롱을 받습니다. 그러나 잘 훈련된 손흥민은 숨어 흘린 눈물이야 왜 없겠습니까만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에 그런 그의 실력과 인성은 금세 드러나 역시 축구의 본산 유럽에서 화려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자랑스럽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바는 아니지만 드러난 정보들로만 분석하면 두 사람은 본디 잘 어우러질 수 없는 기질입니다. 이강인은 독선적이며, 천재성을 타고난 선수입니다. 규율을 익힐 기회가 없었던 그를 통제하려 들면 야생마에 목줄 거는 것처럼 답답할 것이지요. 규율 밖에 버려두면 다른 건 몰라도 축구에서만큼은 충분한 가치를 드러낼 선수입니다. 

반면 손흥민은 질서와 규율로 통제 속에서 자랐습니다. 타고난 인성도 좋았을 것으로 관찰됩니다만 좋은 부모님 만난 덕도 뺄 수 없구요. 지금은 세계적인 축구팀에서 시니어 선수로 주장까지 맡고 있습니다. 위기가 오면 규율과 질서 안에서 수습하는 데 익숙하지요. 자주 볼 수 없이 탁월한 선수입니다. 

이 두 선수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불과 숯불처럼 서로 용납할 수 없음)의 형국입니다. 문제는 이 둘의 특성을 잘 살리는 제 삼의 리더십이 아쉬웠습니다. 손흥민을 손흥민 되도록, 이강인을 이강인 되도록 조정, 통제, 협업하게 만드는 감독이 필요했습니다. 선수의 결을 보고 결대로 힘을 북돋웠던 ‘히딩크’ 감독은 그 좋은 모범이지요. 선수들의 특성을 잘 파악했고, 선수 개개인의 요구를 잘 수용하여 세계적인 선수들로 키워 냈습니다. 그 덕에 2002년의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세상에 월드컵 4강이라니요!. 속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무책임한 모습은 실망입니다. 여하튼 탁월한 선수 하나를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교회 안에는 손흥민도 이강인도 있습니다. 근본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삽니다. 상호 이견을 조정, 통제, 협업하게 만드는 지도력이 필요한 공동체입니다. 축구팀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이끄는 건 담임 목사입니다. 모든 담임목사님이 그 일을 잘할 수 있어서 아까운 이강인 선수가 없도록 지혜를 모아 주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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