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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기사승인 [613호] 2024.05.08  18: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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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건 전두엽(지능) 색깔이 아닌 수저(계급) 색깔”이라는 청년의 유서 한 줄이 가슴을 찔렀다, 종종 ‘금수저’들의 횡포가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놋수저, 흙수저들이 박탈감에 빠져들고 금수저들이 반사회성을 띤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흙수저 자성론’을 불 지핀 어느 대학생 글에 콧등이 시큰했다. “나는 흙수저란 말이 싫다. 부모님이 그 단어를 알게 될까봐 죄송하다. 나는 부모님에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흙을 받았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어느 심리학자가 공사현장에서 흥미로운 한 인부를 보았다. 모든 인부들이 바퀴 2개짜리 수레를 바라보면서 손잡이를 밀고 가는데, 딱 한 인부만 앞에서 수레를 끌고 갔다. 다른 행동을 하는 그에게 심리학자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레를 보면서 밀고 가는데 어째서 당신만 끌고 갑니까?” ​그러자 인부는 별 이상한 것을 다 물어본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레를 밀고 가는 사람은 평생 수레만 바라봐야 하지만, 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은 하늘과 땅, 세상을 모두 볼 수 있어 좋잖아요!” 심리학자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건지, 살아지는 건지”를 구별해야 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내 인생은 분명히 ‘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먹고 잘 곳도 없는 한 청년이 파리의 한 의상실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청년은 이탈리아의 유복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부친의 사업이 망해 가족이 다 프랑스로 이주하였고, 생활이 어려워 적십자사에서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 나갔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형편이라 옷을 사 입을 수가 없어서 이 청년은 스스로 자투리 천을 구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어느 날 비를 피해 의상실 앞에서 의상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의상실에서 나오던 한 부인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물었다. “어머 그 옷 참 멋이 있네요. 어디서 맞추었지요?” “네? 이 옷은 맞춘 것이 아니고 제가 만든 것입니다.” “그래요? 정말로 멋집니다! 당신에게는 옷을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나 봅니다.” 청년은 이름 모를 이 부인의 한마디에 눈이 번쩍 뜨였다. 1950년 이 청년은 부인의 그 한마디에 빚을 얻어 의상실을 차리게 되었다. 그런데 디자인 솜씨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퍼지고, 영화 ‘마녀와 야수’의 의상을 담당해 줄 것을 제의받아 성공적으로 해내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최고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은 무한하고 위대하다. 긍정의 자세가 좋은 인생을 만들어 간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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