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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 (60)

기사승인 [638호] 2025.03.07  16: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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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물과 식물과 사순절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서울 사는 며느리가 아이 가져 입덧할 때 맛있게 먹던 거라며 오렌지 한 상자를 보내왔습니다. 맛있다는 자랑이 들어서 그런지 오렌지 특유의 향이 짙고, 과육이 탄탄한 게 더 실하고 맛있습니다. 두어 개 까먹노라니 이걸 서울서 사려면 제법 비싸겠다는 생각에 닿습니다. 한 달 한 달, 몇 푼씩 월급 받아다 집세 내고 대출금 이자 갚고 아이 기르며 사는 살림에 과다 지출이었겠다 싶지요. 누구나 그렇지만 자식들의 공여에는 그렇게 애처로운 비린내가 나는 법입니다. 서걱서걱 먹히지 않습니다. 먹어 없애기보다는 눈으로 아끼느라 오래 놓고 봅니다. 과일이 식물이 아니라 관상용이 됩니다. 거의 말라비틀어질 때까지요.

몇 날을 테이블 위에 쌓여 자랑처럼 지났습니다. 바나나 몇 개, 사과 몇 개랑 함께 이 오렌지도 태곳적부터 거기 있던 정물화로 자리 잡아갑니다. 이미 먹는 과일이거나 식물이 아닌 거지요. 관상용 그림으로 가라앉는 겁니다. 정이 들었느니 훈훈해 보이는 그림입니다.

20년 가까이 매주 금요일 새벽에는 목사님들이 제 서재로 책 읽으러 오십니다. 매주 한 권씩 책을 읽어대는 일이 일상이 된 것은 큰 자산입니다. 그분들이 새벽예배 마치고 공복에 오십니다. 그 발걸음의 허한 속내를 달랠 간단한 다과와 커피 한 잔도 늘 곁들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군목으로 예편하신 주기철 목사님이 맛있는 케이크를 가져오셨습니다. 그 케이크 두어 조각과 우유에 곡물을 넣고 갈아 만든 음료와 함께 커피로 정을 나눕니다. 그 소박한 교제도 참 훈훈합니다. 한 목사님이 마침 테이블에 놓인 오렌지를 지칭하여 ‘이거 먹는 거, 간식이에요?’ 합니다. ‘그럼요. 그럼요. 드셔, 맛있어요.’ 며느리의 공여가 목사님들께 닿으면 복이 되리라는 내심도 담아 그리 권했습니다. 믿음의 바램은 무의식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그 후에 들었구요. 솜씨 빠른 목사님 손에 들린 칼끝에서 제법 단단한 껍질이 해체됩니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좋습니다. 그리 까발려 접시에 담아 놓으니 정물(靜物)에서 식물(食物)로 탈바꿈합니다. 한 조각을 얻어다 우걱우걱 몰아넣습니다. 정말 과즙이 풍성하고 상큼하게 맛있는 오렌지입니다. 오렌지의 과즙이 체내에 들어가 세포 하나하나를 살려내는 느낌입니다. 역시 오렌지는 눈으로 보는 용도가 아니라 해체하여 상큼한 과즙을 누리는 용도입니다. 그럼요.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데요.

내 신앙의 테이블을 관망합니다. 이미 오래 그 자리에 있어 정형화된 것들이 보입니다. 예배, 찬송, 기도, 설교, 헌금, 봉사 같은 신앙의 열매들이 관상용으로 수북합니다. 긴 세월 습관의 먼지가 뽀얗도록 변함없는 건 한편으로 대견합니다. 저마다 오래된 시간을 베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무채색 그림처럼 무덤덤합니다. 오래 테이블에 정물화로 놓인 오렌지랑 방불합니다. 까발리지 않으니 향기는 없습니다. 상큼한 과즙처럼 예배의 기쁨이 스며나지 않습니다. 기도의 눈물, 찬송의 감동이 메말랐습니다. 늘 새로운 신앙적 감동을 도모하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어쩌면 내 신앙적 감동이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정물화 속에 멈춰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닿습니다.

오렌지를 해체하듯 칼을 들어야겠어요. 칼로 금을 긋고 생긴 틈새에 손가락을 넣어 힘써 벗겨내는 오렌지 박피 작업처럼 내 두꺼운 일상의 껍질에 칼집은 내야겠습니다. 만만치 않은 노작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쳐야 정물화 속에 든 오렌지를 먹을 수 있습니다. 상큼한 오렌지 과즙과 그 향은 껍질 벗기는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 남습니다.

칼은 단단한 내 껍질을 가르는 성령의 작용이든지 말씀의 일갈일 테지요. 마침 사순절에 듭니다. 2025년 3월 5일,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아침까지를 ‘사순절’이라 합니다. 긴 교회 역사 속에 이날들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여 두꺼운 자기 껍질을 벗기는 기회로 이어옵니다. 우리 신앙이 관상용이 아니라 상큼한 실제로 전환되는 기회입니다. 교회마다 “사순절 특별 기도회”들을 계획할 겁니다. 기도가 몸에 익지 않은 분들이라도 그 두꺼운 오렌지 껍질 벗기는 수고를 꼭 투자하십시오. 신앙의 흘러넘치는 감격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게 메마르면 인생도 메마릅니다. 오렌지가 관상용 정물화가 아니듯, 우리 신앙은 관상용이 아니거든요.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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