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

기사승인 [638호] 2025.03.07  17:22:29

공유
default_news_ad2

- 스무살 마크에게 띄우는 헨리 나우웬의 영성편지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기독교적 영성이라야 진짜 영성

헨리 나우웬(1932-1996), 네덜란드 생, 하버드, 예일 교수. 가톨릭 사제, 심리학자. 교수 생활을 접고 장애인 시설인 ‘데이브레이크’에서 여생을 보냄. 수많은 저술들을 통해 영적 안내자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낸 인물로 우리 시대에 수많은 저술을 통해 영적 영향력을 깊이 끼친 인물이다.

편지 1, 예수님: 우리 존재의 중심.

영적 사람이 되지 않고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영적이라고 표현한 수 있는 수만은 영역도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기독교적 영성이라야 진짜 영성이다.

편지 2,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실망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 곁에 오신 주님은 절망적인 제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신다. 로마의 압제가 빼앗아 갈 수 없는 완전한 자유다. 이 자유를 실제로 체험하는 사례는 옥중의 본훼퍼, 반군에게 남편 잃은 니카라과의 할라파 여인들이 누리고 있었다.

엠마오 도상의 식탁은 삶의 성찬식이다. 예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깨닫고 힘 얻은 사연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삶의 출발점이다.

편지 3, 예수님: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는 그리스도는 고난을 없애는 게 아니라 함께 고난 당하심으로 이루신다. 인간에게 죽음은 절망이다. 그러나 죽음을 통과한 후 얻는 새 생명이 우리의 궁극적 목적이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십자가 고통의 그림을 들이댄 것이다. 문제의 해결책 보다 그 문제에 안에 함께 있는 사람이 더 친근한 친구인 것처럼 고난의 자리에 함께 계신 예수님의 긍휼이 우리를 만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찬은 그분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체화(體化)하는 자리다.

편지 4, 예수님: 내려오시는 하나님.

예수님의 삶으로 가시화된 하나님의 사랑이 장 바니에가 창설한 라르쉬(방주)공동체로 재연된다. 대학의 교수로 있던 이가 오갈 데 없는 지적 장애 장애아들을 돌보는 일이다. 역시 대학에서 가르치던 저자가 공동체에 동참한다. 상향성을 추구하는 대학에서 하향성이 중요한 시설로의 하방(下方)이다. 결국 저자도 예수님처럼 내려가는 삶을 택한 것이다. 주님은 작은 길, 은밀한 길, 가난의 길로 위대한 업적을 숨기셨다. 결국 죽음의 길로까지 낮추신다. 사람들 속에 오셔서 고난에 이은 죽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자리까지 낮아지심으로 진정한 위로자가 되셨다.

편지 5, 예수님: 사랑하시는 하나님.

필리핀의 아키노, 미국의 마틴 루서 킹, 인도의 간디 같은 지도자들을 증오와 폭력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이 길에 동행할 지원군, 작은 공동체가 필요하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징하는 미국의 작태가 현실적이다. 인류는 예외적인 아키노의 비폭력을 본받으려 하지 않지만, 여전히 인간 희망의 징조다. 성찬의 살과 피를 받을 때, 그분의 사랑이 주어진다.

편지 6, 예수님: 숨어계신 하나님.

평생 전신 장애로 살다 간 ‘마르트 로뱅’ 1928-1981년까지 주 1회 치르는 성찬 이외는 금식으로 산다. 그 안에 예수님의 영성, 인격이 숨어 흐른다. 장장 51년간 숨어 고난당한 로뱅의 방에서 고난과 상충하지 않는 기쁨, 완전한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온전한 굴복, 숨어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고난 속에 낡은 질서가 죽은 로뱅은 방문객들을 행복하게 만났다. 초점은 언제나 ‘나’가 아니라 ‘당신’이다. 누구라도 그를 만나면 내면이 평안을 가져갔다. 숨어 있는 로뱅의 영향력이 프랑스 교회를 일깨웠다. 그 안에 숨으신 예수님의 드러남이다.

편지 7, 예수님의 음성 듣기.

그간의 편지가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려는 열망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성공 지향적 세속화의 욕망은 여전하다. 교회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의 부당함을 안고서도 교회의 절기와 성찬에 참여하고 말씀을 듣는 것으로 주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렉시오디비나’ 책에 귀 기울이면 성인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마음에 귀 기울이면 예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늘 세미하여 강제하지 않으시는 그의 음성은 귀 기울일 때 들을 수 있다.

평(評).

유럽의 여러 곳, 캐나다, 남미, 필리핀 등의 정보가 현실적이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정보들을 시사적으로 누릴 수 있는 광폭 행보가 부럽다. 차분한 어조로 어르고 달래듯 복음을 시전한다. 25년 전의 책이지만 현대인, 젊은이, 교회 안의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길로는 유용해 보인다. 인척간의 소통 형식을 차용하여 일반 대중에게 까지 복음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밝혔지만,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는 저술이다.

성찬 이해의 이견이 나타난다. 단순히 ‘화체설’로 거절하기보다 그 진중한 내면이 추구하는 영성의 열망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의 성찬식은 너무 건조하지 않은가.

‘나’ 아닌 당신의 안부를 묻고 귀 기울이는 목회자로 살자.

자기 최소화의 과정이 결여된 기독교 문화의 아쉬움이 남는다. 숨어 살자.

헨리 나우웬. 윤종석 역, 복있는사람. 2000년 09월 29일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