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홍기춘 원로목사의 목회와 신앙 (12)

기사승인 [625호] 2024.10.17  05:07:52

공유
default_news_ad2

사람 낚는 어부가 될래요!

“어떻게 일요일에 문을 닫을 수가 있나? 장담하건대, 저건 망한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예배드리고 십의 일조를 드리는 기쁨에 나는 마냥 행복했고 만족하였다. 남들이 “저 어린 자식이 와서 다 망해 먹는다”고 조롱할 때, 나는 십의 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망하지 않게 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음으로 나아갔다. 나의 모 교회인 장자도교회에 십의 일조를 보냈다. 그리고 더욱 더 기도에 매달렸다. 교회에는 더욱 더 충성으로 봉사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성실함으로 가게를 운영해 나갔다. 그러자 상가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분들은 “예수를 믿으려면 기춘이처럼 믿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어렸던 나에게 중매를 하기도 하였다.

결국 형이 제대할 때 즈음 가게는 더욱 성장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군산에 집 한 채를 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가게를 형에게 되돌려주고 신학교로 갔다.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정말로 열심히 주일을 예배로 지키고, 기도하고 교회에 충성하며 특히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십의 일조를 온전하게 드리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경험하였다.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십의 일조를 원 없이 드리고 싶었지만 드릴 돈이 없어서 하지 못했는데 가게를 맡음으로써 원 없이 십의 일조를 바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축복인지. 평신도로서 십의 일조를 진심으로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던 유일한 기간이었다. 십의 일조를 드리지 않은 사람은 그 기쁨을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내 나이 19살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다 망한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셨다. 이것은 내 평생의 큰 축복의 경험이었다. 목사가 되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섬에서 혼자 웅크리며 기도만 하고 있던 나를 군산으로 이끌어내어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형이 무척 고맙다.

강원도 산골 귀래교회에 부임

신학교 졸업 후, 강원도 원성군 귀래면에 있는 귀래교회에 처음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원주에서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양아치고개라고 불리는 큰 산을 넘어 산길을 따라 구비구비 돌아서 도착했다. 지금은 도로가 매우 좋아져 우회도로까지 생겼지만 당시엔 비포장도로에 험난한 전형적인 강원도의 산길이었다. 버스가 지나가면 동네는 온통 먼지투성이다. 흙벽돌로 오래전에 지어진 교회 주택은 길옆에 있어서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귀래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던 해는 1977년 3월 5일이었다. 나는 임신 5개월 된 아내와 함께 귀래교회에 도착했다. 1950년대 6.25전쟁 피난민들에 의하여 세워진 귀래교회는 미자립의 어려운 형편이었다.

50평이 안 되는 논 옆 대지에 흙벽돌로 지은 약 30평형의 교회였다. 흙벽돌로 지었기 때문에 교회의 벽은 금이 가 있었다. 성도들은 약 15~20명 정도 출석했다. 재정상태가 빈약해 도시교회에서 선교비를 지원받아야만 했다. 한 달에 1,500원 정도의 적은 사례비를 받았다. 그 적은 사례비마저 교회재정으로 충당이 안 되어 도시 교회로부터 매월 선교비를 지원받아야 했다. 당시 농촌교회들의 형편이 거의 다 그러했다. 작은 생활비에서 10의 3조를 떼고 각종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면 생활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귀래교회는 1950년대 설립 이후, 27여 년 동안 12명의 교역자들이 1~2년 정도 있다가 다른 곳을 찾아 나갈 정도로 힘든 교회였다.

교회 주택은 오래전 피난민이 지은 흙벽돌집으로 지붕은 슬레이트로 되어 있었다. 흙집이기에 울퉁불퉁한 흙벽은 벽지가 잘 붙지 않아서 벽에 붙어 있는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안 붙어있어 바람 이 불면 벽과 천정이 통하며 흔들렸다.

벽과 벽지 사이로, 천정으로 쥐들이 돌아다녔다. 꿈틀거리는 벽지의 움직임을 보고 벽지 사이로 돌아다니는 쥐를 손으로 눌러 잡아내곤 했다. 방안에 놓인 음식은 쥐가 먼저 차지했다.

사방이 뚫린 옛날 흙집 부엌은 흙길에서 날아오는 흙먼지로 가득 쌓이곤 했다. 부엌에는 옛날 솥과 우리가 가져간 그릇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당엔 간장이 가득한 큰 장독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