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프리랜서 작가 김현희 / 문학 작품 분석

기사승인 [618호] 2024.07.18  10:53:34

공유
default_news_ad2

- 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1)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 궁금증이 호기심으로 변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물리학과에 진학하고 박사 과정을 밟으며 세상을 이해하는데 문학이나 철학, 예술은 필요 없고, 물리학만 이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물리 제국주의자가 되었던 저자는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난다.

물리학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던 욕심으로 도달한 연구 결론은 물리학을 넘어선다. 다양한 주변 학문을 통해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물리학자의 좌충우돌 여행기이자, 세상의 궁금증에 안달하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북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이유를 아는 것은 이치를 아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을 물(物)이라 하면, 존재 이유는 사물의 이치이고, 우리는 이것을 물리(物理)라 부른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그 복잡하고 방대한 양의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상당히 깊어졌고, 그 쌓인 지식의 탐구는 작은 분야조차 평생 공부해도 부족하다. 그래서 현대의 학문은 지나치게 세분되어 물리학 내에서조차 세부 전공이 다르면 서로 소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책으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물리학자의 시각이지만 학문의 경계를 넘어 세상의 이치를 두루 이해해보려는 이야기 모음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자의 특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식물의 광합성이 태양 빛을 이용하고, 태양이 수소 핵융합 반응으로 빛을 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수소는 지구상 모든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라 할만하다. 수소, 탄소, 질소, 산소는 사람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99퍼센트를 이룬다.

“물리학자에게 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자연에 존재하는 인과율을 깨닫는 순간, 세상을 인과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그 인과율을 넘어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신’의 의도로 채워졌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규율은 이기적이고 호전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나마 죽이지 않고 협력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신에 대한 탐구는 축의 시대(2500년 이전의 시기)를 거치며 상이한 문화권에서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바로 타자를 향한 공감과 자비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지만,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에 이르는 길에는 왕도가 있었던 거다. 이후 종교는 세속화되기도 하고 권력과 더 긴밀히 결탁하기도 했지만, 그 핵심 내용은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결국 신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만들어 낸 궁극의 상상력이었던 게 아닐까.

물리학의 관점으로 본 지구에 존재하는 만물은 생물과 무생물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볼 때 인간이 만든 물질은 정말 무시할 만큼 적다.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 인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구의 껍질인 지각 대부분은 흙과 암석이다. 생물이 있기는 하지만 흙의 양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된다. 새 발의 피도 너무 많다. 사실 지구조차 우주에서는 표준이 아니다. 태양계만 해도 그 질량 대부분을 태양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상 모든 물질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 주위에서 보는 물질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기는 힘드니까 우선 지구의 물질, 즉 지구 그 자체에 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지구 전체를 이루는 물질은 철과 산소가 각각 30% 정도이며 규소와 마그네슘이 각각 15% 정도 되고, 황, 니켈, 칼슘, 알루미늄까지 99%가 된다.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서 산소가 등장한다. 산소야말로 모든 물질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수소는 너무 가벼워서 쉽게 날아가 버린다. 생명의 필수 원자 질소는 지각에 별로 없지만 대기의 80%를 이루고 있으니 지각의 중요한 일원이라 볼 수 있다.

원자의 시각으로 본 물질 세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존재하는 물질의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기체 덩어리다. 태양과 같은 별이나 토성, 같은 거대 행성이 여기에 해당된다. 질량으로 보면 이들이 태양계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구 같은 암석 행성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다. 우리는 죽으면 흙으로, 즉 지구로 돌아간다. 이것은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다음은 ‘오마르 하이얌’의 글 일부이다.

“나는 진흙을 빚어 도자기를 만들었다.

흙이 말한다. 왜 당신은 나를 건드리는가?

그대와 나는 둘 다 같은데.

비록 일부가 가라앉고 일부는 떠올라도

우리는 모두 단지 흙일 뿐이다.”

이렇게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 근원은 바로 별이다. 태양광의 근원이 별이라고? 그렇다. 태양도 별이기 때문이다. 태양은 지구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별이다. 태양은 지구에 빛을 보내는데, 그 빛은 에너지를 갖는다. 지구에 도달한 빛은 물을 수증기로 만든다. 수증기는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떨어진다. 이 물이 흘러 바다로 이동하며 강을 이룬다. 강을 막아 떨어지는 물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생산한다. 수력발전이다. 빛은 공기 온도를 높인다. 빛이 닿는 각도나 양에 따라 지역마다 온도가 높아지는 정도에 차이가 생긴다. 온도가 다르면 기압도 다르다. 기압 차이가 생기면 바람이 분다. 바람으로 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풍력발전이다. 즉, 수력발전과 풍력발전의 근원은 별이다.

식물은 빛을 이용하여 광합성을 하고, 그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얻고 자기 몸을 만든다. 동물은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먹이로 삼으니, 그 에너지원은 식물이다. 따라서 지구상 생명의 에너지원은 별이다. 3억 년 전 식물은 죽어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 석탄이 만들어졌고, 석유는 수생 동식물의 몸이 쌓여 만들어졌으니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도 별에서 온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자핵의 분열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결국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별이다. 그렇다면 별은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가? 태양이라는 별의 부피는 지구의 120만 배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태양의 에너지원은 원자핵이다. 원자핵은 원자의 중앙에 있고 크기는 원자부피의 1000조 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존재가 태양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우주는 시공간 상에서 물질이 운동하며 만들어 내는 거대한 연극이다. 물질의 운동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에너지의 근원을 추적하면 태양에 다다른다. 우리는 별과 연결되고, 별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자핵과 연결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핵은 변하지 않는 물질의 토대가 되지만, 별의 원자핵은 쪼개지고 합쳐지며 우주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어떤 원자핵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는 또 다른 원자핵으로 만들어진 물질들의 움직임을 추동한다. 이렇게 우주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물리학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먼저 물리학자의 눈에 비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내 몸을 이루는 산소 원자와 책상, 자동차, 고양이, 강물을 이루는 산소 원자는 완전히 똑같다. 결국 같은 원자들이 모여 배열하는 방식에 따라 세상의 온갖 다양한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명을 이루는 원자는 특별하지 않다. 그렇다면 똑같이 특별한 것 없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책상이나 자동차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생명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많은 이가 동의하는 생명의 속성은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메카니즘’이 있어야 하며 번식을 통해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학자가 보기에 유지와 복제, 이 둘의 결합이 생명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정의할 필요 없다. 원자의 집단이 갖는 자연스런 상태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흙, 돌, 바다, 공기, 지구, 달, 행성, 태양, 은하 등은 모두 죽어 있다. 생명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자로 되어 있지만,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다. 생명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니(지금까지는 지구 밖에서 생명이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은 이상한 사건이 아니라 생명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생명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한 것은 아닐까? 물리학자의 눈으로 죽음을 바라보면 생명은 더없이 경이롭고 삶은 소중하다. 이 기적 같은 찰나의 시간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낭비하거나 남을 미워하며 보내고 싶지 않다. 생명이 없는 우주에서는 생명이 놀라운 일일지라도, 이미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생명은 당연하고 죽음은 인간에게 속수무책의 재앙일 뿐이다.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바다출판사, 2023.

< 지금까지 1~2장입니다. 3~4장은 다음 호에 소개합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