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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38)

기사승인 [616호] 2024.06.13  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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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관찰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관찰’(觀察), 국어사전의 뜻풀이와 다르지 않지만 내 말로는 ‘사물과 사연, 사람을 향해 마음을 집중하는 일’입니다. 나부터 관찰 대상으로 삼습니다. 대충은 외향성이 더 강한 인성입니다. 밖으로 돌아 친구가 좋습니다. 더 깊은 속내는 홀로 있어 자신을 잘 충전하는 성향이 도타우니 내향성으로 관찰됩니다. 주변 사물의 관찰을 자주 글로 적습니다. 궁상맞게 주로 산골에서 자라던 유년 시절에 내재 된 경험이 관찰의 기준 된다는 점도 발견합니다. 새로 된 정보나 지식의 생경함이 아직 그에 못 미친 까닭이겠지요. 기어이 나무, 풀, 꽃의 이름을 유년 시절에 형성된 빈약한 기억에서 돋궈내느라 애쓰곤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박물학 지식’에 닿지도 못하면서요. 6월이 7월 되고, 방학으로 이어지는 8월의 산하에는 만날 때마다 반가운 나무, 풀, 꽃들이 지천입니다. 막 지나간 건 매실과 오디입니다. 어디쯤 입이 새까맣게 먹어대던 버찌도 익어가지요. 하지 전에 새로 만날 친구들은 보릿짚 태우는 훈향, 구수한 감자, 입에 침 괴는 살구 등입니다. 너른 배경은 하루아침에 모 심어 초장 되는 벌판이구요. 역사의 모든 향기를 실어 오는 석양의 바람도 외면 못 합니다. 그 바람에 심지어 로마 시대의 서정까지 든 것은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끝자락에서 온 환영(幻影)일 겁니다.

최근 관찰은 새벽 산책길의 들판에서 만나는 양수 모터입니다. 수원지가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거대한 농수로에는 물이 철철 넘칩니다. 넓디 너른 들의 논둑마다 양수기를 설치해서 그 물을 논으로 뿜어 올립니다. 그러라고 논둑마다 여지없이 전봇대를 세웠습니다. 싼값으로 쓸 수 있는 농업용 전기가 왜 필요한지를 체감하는 관찰입니다. 내가 자랄 때는 주로 물꼬를 통해 물을 댔습니다. 꼭 필요할 경우라도 발동기, 혹은 경운기에 피댓줄 걸어 돌리는 양수기 정도였습니다. 시끄러웠지요. 그 내연기관 소음조차 없이 물을 끌어 올리는 양수 모터를 그야말로 관찰합니다.

우선, 지켜선 주인 없어도 잘 돌아갑니다. 만든 모양은 전기모터에 양수기가 일체형을 이루어 거의 비슷하지만 크기가 각각입니다. 큼직한 녀석은 중저음의 느긋한 소리로도 물을 많이 토해냅니다. 작은 건 악을 쓰듯 맹렬한 소리로 빠듯하게 뿜어 올리지요.

물을 빨아올리는 쪽과 내 뿜는 쪽의 호스가 다릅니다. 흡입구, 토출구로 해 두지요. 토출구는 주로 천막 짓는 소재를 말아 박음질해서 만듭니다. 길게 연결해도 물이 흘러나가는 데 지장 없습니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유동성이 좋지요. 쓰지 않는 동안에도 그냥 둘둘 말아 들판에 방치해둔 물건이니 색 바래고, 구멍 났습니다. 그 긴 호스의 어디쯤 구멍이 났거나 낡아 헤졌어도 여하튼 논에다 물을 뱉어내니 별 상관없습니다.

흡입 호스는 까다롭습니다. 토출 호스처럼 흐물흐물해서는 안 됩니다. 흡입 압력을 버텨 주어야 하니 단단한 플라스틱 재질로 만듭니다. 양수기에 연결하는 부분에는 튜브 찢은 고무로 여러 번 감아 놓았습니다.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요. 일정 길이를 넘으면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니 대부분 3m를 넘지 않습니다. 그 끝에는 거름망이 걸렸습니다. 모터 옆에는 꼭 물병 한두 개가 누워있습니다. 관찰 결과 마중물입니다. 처음 가동할 때 이걸 부어야 물을 빨아올립니다. 양수기가 비어있으면 헛바퀴 돌거든요.

복음 전도와 같습니다. 복음의 마중물을 부어야 복음을 끌어 올립니다. 통로가 정확해야 합니다. 지탱할 힘이 없으면 헛물켭니다. 새지 않아야 합니다. 이성적 분별을 무시하지 않지만, 순수한 복음에 그런 게 섞여들면 영적 공회전이 일어납니다. 헛물켜는 거지요. 너무 길지 않아야 합니다. 적어도 일주일, 더 빨리는 매일 복음을 빨아올리지 않으면 양수기가 메말라 헛물켜는 공회전 됩니다. 거름망도 꼭 있어야 합니다. 물속에는 잡것들이 많거든요. 양수기를 든든하게 채우고 모터를 돌리면 드디어 물을 쏟아냅니다. 모터를 작동시키는 힘은 끊이지 않는 전기입니다. 논바닥 어디든지 넉넉히 물을 뿜어낼 수 있습니다.

이 관찰이 성령 충만의 형용을 설명하는 말일 수 있겠지요? 나의 내면을 채우는 일은 까다로운 흡입 호스로 둡시다. 단단하게, 새지 않게, 길지 않게 마련해야 합니다. 마중물 같은 복음 본질로 내 안을 채우고, 성령의 강력한 역동에 빗댈 모터를 가동하면 헛바퀴 돌지 않고 메마른 땅을 흡족히 적실 성령의 생수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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