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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82)

기사승인 [616호] 2024.06.13  07: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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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의 장미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아주 오래전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정미경의 소설을 읽었다. 삶을 드러내는 문학들이 거의 그러하듯 무척 쓸쓸한 이야기. 외로운 기러기 아빠가 아내 아닌 여자를 사귀며 그녀에게 자신이 해왔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 여행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으로 엮은 거짓말이다. 죽음의 결말. 하긴 어느 결말이 죽음 아닌 것 있겠는가만 그중에 발칸의 장미 이야기가 나온다. 발칸의 장미가 향기가 좋다는. 장미를 목 베는 시간이 새벽이어야 한다는, 그 시간에 향기가 가장 많다는, 엄청난 양의 장미 속에서 아주 아주 조금 향수가 나온다는, 그래서 장미 향수나 오일이 무척 비싸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패키지 여행의 매력 중 하나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초딩 딸 둘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랑 저녁 식사를 했는데 시차로 잠을 못잤다고 하니 마그네슘 네 알을 주었다. 근육이 이완되고 잠이 잘 올 거라는. 난데없는 약 선물에 마음이 무척 좋았다. 내 딸보다 겨우 두 살 더 많은 그녀와 그녀의 어린 딸들, 나는 정말 애들과 수준이 딱 맞아. 걔들과 말하는 게 여행 내내 즐거웠다. 그 두 아이의 약간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ㅡ아 그 무성한 숲을 보는 즐거움. 머리카락 숱에서 다가오는 그 왕성한 생명감이라니.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요? 우린 비 걱정도 했다. 나는 정말이지 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디 여행을 가서도 우리 동네에 비 소식이 있으면 집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여행지의 비도 즐긴다. 단양을 이박삼일 다녀올 때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오, 차 안에서 듣는 그 빗소리라니. 비는 여행을 그윽하고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던 배경이었다. 하지만 머나먼 나라 발칸인데.....

예보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한걸음에 국경을 지나 슬로베니아 그중에서도 핫플인 브래드로 왔다. ​슬로베니아(slovenia)에 love가 들어있어서인가, 슬로베니아의 브래드 호수는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알프스 산 끝자락에 있어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호수라고 한다. 그 호수 위에 자그마한 아름다운 섬이 한그루 배처럼 떠 있는데 교회의 첨탑이 푸른 호수와 어우려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호수는 세상의 침묵을 가득 담고 고요했으며 부드러워 보였고 짙은 안개 속에서도 그만의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전통적인 나룻배 플래타나 ㅡ힘 세 보이는 젊은 뱃사공이 비를 맞으며 노를 저어준다ㅡ를 타고 섬으로 갔다. 아흔 아홉 개의 비에 젖은 계단은 교회 오르는 길, 오래된 둘에 묻은 물기는 소심하게 사람을 만들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풍경도 사람의 관계처럼 멀리서 볼 때 신비로운것일까, 천천히 교회의 담장 주변을 거닐 때 나는 그녀. 그를 만났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처럼 따다다다~ 엄마야! 내 안에 숨어 있던 탄식이 저절로 솟구치게 하던 비에 젖은 장미 한송이! 단언컨대 그런 색, 그런 형태, 그런, 그런, 그런~~~장미는 처음이었다. 키가 제법 있어서 줄기가 내 키보다 살짝 더 위로 솟아나면서 멀리 푸르른 호수를 배경으로 거기 <존재>했다. 나는 가슴이 뛰었고 설렜고 어느 귀인을 만날 때 이토록 눈부시리, 보다 더 정확해 보자면 그것은 기쁨이었다. 세상의 것이 주는 그런 즐거움이 아니라 온전하고 순전한 기쁨. 내 안에서 발화된, 내 속에 침잠해있던, 아름다움을 느끼는 새롭고 여린 순이 솟아났다고나 해야할까, 물론 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은 내가 만난 그 <존재>가 절대 아니다. 그 존재가 완전이라면 사진은 사진답게 셔터의 아주 짧은 순간, 그의 내밀함에는 조금도 다가서지 못한 순간의 허물 같은 것, ​

릴케는 패혈증으로 죽었다. 원래 백혈병에 걸려 있던 차 장미 가시에 찔러 시작된 병이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이해하기 어렵던 릴케의 시가 마치 내가 쓴 시처럼, 체득하게 해주던 장미 한 송이(아 그리고 사월과 오월이 부른 장미 한 송이도 생각났다). 나는 발칸의 장미를 만났다. 발칸에서. ​​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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