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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 (87)

기사승인 [574호] 2023.02.01  16: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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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여성운동

정상운 박사 (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

아직도 어수선한 교단 정치적 상황이었지만 제2회 부인회연합회 총회는 임원개선을 통하여 회장-백신영, 부회장-박기반, 서기-이문희, 부서기-박영애, 회계-태애도, 재무-전금희를 선출하였다. 2회부터 5회 총회 때까지 임원은 도표 1의 다음과 같다:

                                         도표1 부인회연합회 임원명단

2. 부인회 연합회의 주요활동

앞서 살펴본 개교회의 부인회는 총회로부터 부인회 규칙규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주로 일정한 수준 이상의 큰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정된 목표나 상위의 지도조직이 없었다. 성미 수집을 통해 부족한 교회경비 충당과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을 하는 등 개교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도숙 전도사는 부인회 사업을 적극적 사업과 소극적 사업들로 나누어 그 활동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소극적 사업으로는 각기 부인회가 속하여 있는 교회의 전도사업을 돕는 일을 들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①부인회 사업과 목적을 세운 후에 기도회 개최 ②심방대를 조직하여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대심방 실행 ③체계적인 성경공부 ④성미를 바침으로 그 대금을 통한 남녀교역자 생활비 일부보조나 교회경비 부담 그리고 구제나 자선사업 시행과 같은 4가지 사업이다.” 또한 적극적 사업으로는 부인회 전국연합회 사업에 참여를 말하며,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의무적으로 시행하였던 부인회 전국연합회에 대한 각 교회 부인회 부담금은 수입금액에 대한 30%이었다.

1) 교회개척

1930년대의 한국교회는 대략 38만 정도의 교세였으나 20년대의 경제적 시련과 지식의 황잡(荒雜)에다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곁들여 망망한 황원(荒原)을 걷는 것 같았다. 국내 안팎으로 어둡고, 참담한 1930년대 시대적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부인회 전국연합회는 각 교회 부인회에서 후원한 선교비를 모아 연합회 사업들 가운데서도 우선적으로 국내외 교회개척에 전력을 다했다.

부인회 전국연합회가 교회개척에 대해서 첫 번째로 사업에 착수한 곳은 남만주지역 심양에 위치한 심양교회였다. 한국성결교회는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만주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것은 동양선교회 이사회 이사진과 전국교회 교역자들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 이전에 성결교회가 만주에 처음 선교를 개시한 때는 만주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성결교인들의 독자적인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1924년 간도지방 용정에 부여 규암교회 박기래 집사와 경주교회 박장환, 한치국 3인이 이주하여 기도회와 전도집회를 가진데서 시작되었다.

1936년 3월 20일 성결교회 부인회연합회 제2차 총회 때에 1933년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남만주 심양교회에 파송된 이춘화(李春和) 전도부인은 만주인으로부터 세내어 예배드리는 곳이 불완전하여 고통당함을 호소하였다. 선교지 상황의 어려움과 성전 건축의 필요성을 들은 부인연합회에서는 그 즉시 약속헌금을 포함하여 235원 21전을 특별헌금을 하여 심양교회 건축헌금을 모금하였다.

부인회연합회 첫 사업으로 건축된 심양교회는 1937년 8월 23일 헌당식을 가졌다. 만주인 청부업자를 통해 연와제(煉瓦制) 양식으로 지은 심양교회는 총경비 1210원이 공사비가 들었다. 지출 내역으로는 교우들의 헌금이 200원, 봉천 서탑교회에서 50원,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부인회연합회에서 보조하였다.

실제로 부인회전국연합회 선교비 내역 중에 총수입금(1935-1938년 4월 20일까지 1590원 86전에서 봉천심양교회 건축비로 총수입의 2/3가 넘는 901원 47전을 지출하였다. 외지선교의 열매인 심양교회 개척을 필두로 해서 부인연합회에서는 제3회 총회시에 전남 광주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의했다.

1937년 군위교회, 임자도교회, 무순교회, 봉천교회, 정동리교회 5개 교회에서 교회보조에 대한 청원이 들어 왔으나 부인회연합회에서는 청원 요구를 거절하고 교회개척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부인회 전국연합회 회장 백신영 전도사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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