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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시문학(12)

기사승인 [612호] 2024.04.24  21: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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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식과 구원의 메타포

신영춘 목사(시인, 신학박사, 천광교회 담임)

직유법은 즉, ‘나는 ~와 같다’, ‘나의 대적은 ~와 같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5편에서 대적은 “열린 무덤 같은 목구멍”으로, 7편에서 악인을 “해산하는 자, 잉태하는 자 같다(14절)”고 하였고, 9편에서는 “딸 같은 시온의 문(14절)”으로 시적 화자를 표현하고 있으며, 10편에서 대적은 “굴혈에 엎드린 사자 같다”와 시적 화자는 “외로운 자, 고아 같다”고 하였다. 14편에서는 악인을 “떡 먹듯 하는 자”, 17편에서는 “움킨 것을 찢으려는 사자 같고,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다”고 하였다. 22편에서는 “사자 같으니이다(13절)”,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14절)”, “내 마음은 촛밀 같이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14절)”, 28편에서는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다”고 하였고, 39편에서는 “손 넓이 같은 나의 날(5절)”, “그림자같이 다님(5절)”으로, 42편에서는 “칼 같은 비방(10절)”하는 대적, 52편은 “삭도 같은 혀(2절)”로 대적을 묘사한다. 시적 화자인 나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8절)”로, 53편에서는 대적을 “떡 먹듯 하는 자(4절)”로 묘사한다. 55편에서는 시적 화자가 “비둘기 같은 날개(6절)”로 묘사된다. 57편에서 대적에 대하여 “사자 같고, 불사르는 자 같다 (4절)”고 하였다. 59편에서 대적을 “개처럼(6절)”과 “개처럼(14절)”으로 묘사한다. 64편에서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고, 화살 같은 독한 말 (3절)”로 묘사한다. 88편에서 시적 화자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다(4절)”, “무덤에 누운 자 같다(5절)”고 하였다. 109편에서는 대적에 대하여 “옷 입듯, 물 같이, 구름 같이(18절)”.“입은 옷 같고, 띠와 같게(19절)”라고 하였으며, 시적 화자에 대해서는 “석양의 그림 같고, 메뚜기같이 불려 간다 (23절)”고 하였고, 다시 대적을 향하여는 “욕을 옷 입듯 하게, 자기 수치를 겉옷같이 입게(29절)”라고 하였다. 140편에서는 대적에 대하여 “뱀같이 그 혀가 날카롭다(3절)”고 하였다. 141편에서 시적 화자에 대해서 “분향함 같은 기도, 저녁 제사 같은 나의 손듦(2절)”, “머리의 기름 같게(5절)”, “흙을 부스러뜨림 같다(7절)” 등으로 표현하였다.

D. 은유법

은유법은 뒤에서 좀 더 다루겠지만 ‘~은 ~이다’라는 표현법이다. 물론 시적 화자나 대적에 대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특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표현할 때 이 은유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탄식시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묘사한 은유법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3편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방패, 영광, 머리를 드시는 자”로 표현하고 있다. 5편과 7편은 “방패”로 표현한다. 9편에서는 “산성”과 “군대”로 표현한다. 10편에서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 숨으시는 분,” “왕”으로 표현한다. 14편에서는 “피난처”로 표현한다. 22편은 “나의 힘(19절)”으로 표현한다. 28편에서는 “반석, 힘, 방패, 구원의 산성, 목자”로 표현한다. 31편에서는 “견고한 바위, 구원의 보장(2절)”, “반석, 산성(3절)”, “장막에 감추는 분(20절)”, “견고한 성(21절)”으로 표현한다. 35편은 “방패와 손 방패를 취하신 하나님, 창을 빼신 하나님(2절)”으로 표현한다. 42편은 “반석(7절)”으로 표현한다. 43편에서는 “힘, 빛, 진리 (2, 3절)”로 표현한다. 52편은 “뿌리를 뽑으시는 하나님 (5절)”이라고 표현한다. 53편은 “하늘에 있는 분(2절)”으로 이는 장소적 개념이 아닌 주권적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55편에서는 “숨는 분(1절)”, “피난처(8절)”로 표현한다. 56편은 “주의 병, 주의 책(8절)”이라고 표현한다. 57편에서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1절)”로 표현한다. 59편은 “산성(9절)”, “우리의 방패 되신 주(11절)”, “산성이시며 피난처(16절)”, “나의 힘(17절)”으로 표현한다. 61편에서는 “높은 바위(2절)”, “피난처시오, 견고한 망대(3절)”, “주의 장막과 주의 날개(4절)”로 표현한다. 71편에서는 “무시로 피하여 거할 바위, 나의 반석, 나의 산성(3절)”으로 표현한다. 120편에서는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4절)”로 표현한다. 앞서 보았듯이 대적이나 시적 화자에 대하여는 직유법과 은유법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유독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표현법에서는 은유법만 주로 사용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하여 ‘여호와는 ~이다’라는 표현법을 사용한 것은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며 신앙이기 때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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