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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기사승인 [554호] 2022.06.22  17: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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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빛으로 사는 사람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그대를 생각하면 언제나 지리산의 한 봉우리를 떠올리게 된다. 어디였을까? 발아래 쪽으로는 유구한 산 그리메가 펼쳐지고 하늘은 짙푸르렀다. 자그마한 돌 위에 우리 둘은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그대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물론 나도 잘 알고 무척 좋아하는 노래였다. 산봉우리 위에서 듣는,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곳이라니..... 가사뿐 아니라 그대 맑은 목소리로 인해 그 노래는 내가 알던 노래가 아니었다. 갑자기 펼쳐진 무지개가 이쪽저쪽 다리를 세우며 이어지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아니 저 멀리 산 그리메로 하얀 베일처럼 노래가 펼쳐지는 것 같기도 했다. 

서로 생활이 달라지고 결혼으로 사는 곳이 멀어지니 그대와도 뜸해졌다. 아주 오래전 인사동 갤러리에서 하던 전시회를 보며 놀랐던 것은 천연 염색 천 위에 그대가 수놓은 여뀌, 여뀌보다 더 여뀌답던, 그 소박한 풀이 빚어내는 여백이었다. 몇 송이의 여뀌가 빚어내는 초가을의 정한은 아름다운 덤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사노라 다시 공백이 이어졌는데....만나지 못해도 어느 한구석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으리. 그래서 올해 이른 봄, 마치 봄처럼 그대가 전시회 소식을 카톡으로 보내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사진으로 보는 전시회의 작품 속 여백은 더욱 확장되고 자연은 깊고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티에르를 사용하지 않고도 놀라운 자연의 마티에르를 더 깊게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그대처럼 자연을 표현한 작가가 어디 있을까, 천연염색? 자연을 천으로 침잠시키는?은 색을 내보이는 게 아니라 자연의 색을 품는 것처럼 보였다. 부드럽고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위무해주는 색이라고나 할까, 그 천들을 바느질해서 이으며 천에 배인 자연의 색들을 배합해서 나무와 숲을 만들어내는 그대, 그대도 보고 싶고 그대의 작품은 더 보고 싶었다. 이심전심인지 작업실의 꽃이 지기 전 한 번 다녀가라고, 역으로 나오겠다고, 월요일이 가장 한가하다고, KTX를 타니 두 시간이 채 안 걸려서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살 없는 몸에 그래선지 처녀 때보다 그대 눈은 더 커져 있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에 취해서 자연을 위해 사는 사람의 눈이라 그런가, 마음에 드는 색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많은 염색의 과정은 차치하고 다시 그 천을 자르고 입히고 이으며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해 내는 과정은 정말이지 지난해 보였다. 작품 속 검은 선들, 손톱만 한 천 조각들이 이어져 있는 사이로 선명한 검은 선ㅡ은 세상에 하나씩 일일이 촛불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오후 두 시가 되자 그대의 아들이 들어섰다. 서른한 살,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나 일 년을 꼼짝도 못 한 채 아이 체중을 불리기 위하여 살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대는 엄마 인큐베이터였던 것. 다운 증후군에 자폐까지 겸한 그대의 아들은 선하고 귀여웠다. 실제로도 순해서 한번 앉으면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그대로 앉아있다고 한다. 그대는 아들이 돌아오자마자 멜론을 갈아서 마시게 했다. 엄마가 차를 마시면 같이 차를 마시고 와인 한 잔씩 둘이 부딪히고 날마다 같이 산책하고.... 그대의 아들은 삼십 년 동안 그대와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그대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끔 아이가 어딜 가거나 그대가 집을 떠나면 그 순간들의 자유로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그대의 말은 솔직해서 더욱 절절했다. 문득 전생치수가 생각나더라. 큰나무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성장을 멈추는 나무. 그래, 그러니 그대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그대는 정말 몸으로 삶을 지어가고 다시 그 삶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가이다. 어려웠던 시절과 작품의 이야기들이 서로 섞여 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냈으리라.

그래서 박영희라는 이름을 단 그대의 작품들이 대만과 프랑스까지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대의 작업실 겸 풀빛 갤러리 주변은 온통 숲이었다. 숲은 들어서기 전 그저 숲 덩어리이나 들어서면 거기 무수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망종화가 한가득 피어나있는 넓은 정원까지 다 그대 손으로 일구어냈으니 정말 그대의 작품은 그대 존재 자체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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