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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 칼럼(2)

기사승인 [521호] 2021.07.07  16: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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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처(nature), 자연과 본성의 두 얼굴

김광연 교수  (숭실대학교)

  네이처(nature)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국의 유명 자연과학 저널 ‘네이처’일 것이다. 전 세계 학자들이 과학 잡지 네이처에 자신의 글을 게재하고 싶어 한다. 네이처는 세계 최고의 저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에 글을 내는 순간 전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유명세를 떨칠 수 있다. 우리는 그 많은 이름들 중에 세계 최고의 저널 이름을 네이처(nature)로 사용한 것에 한번 쯤 물음표를 던질 만도 하다. 어쩌면 네이처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기 때문은 아닌지 그래서 저널 이름을 네이처로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영어 사전에서 ‘Nature’의 의미를 찾게 되면 가장 먼저 자연이라는 뜻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가 사전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서 찾아보면 ‘본성’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인간의 본성 또는 사물의 본성이라는 말을 쓸 때 영어 ‘nature’를 쓴다. 본성이라는 말은 사람이나 사물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 ‘사람의 본성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할 때,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로도 이해된다. 사물도 마찬가지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불을 아래로 움직이게끔 습관을 들일 수 없고 어떠한 것도 본성과 다르게 습관을 들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 불이 위로 타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자 본래적 성질인 것이다. 사물의 본성 또한 결코 바꿀 수 없다. 작은 개울의 물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고 결국 작은 물방울은 태평양의 거대한 바다로 합류하게 된다. 이처럼 본성이라는 의미는 사람이나 사물에게 ‘원래부터’ 존재하는 성질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 네이쳐(nature)라는 단어는 자연과 본성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을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본성은 원래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말하는 데 자연의 숨은 뜻도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성질을 계속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부터 존재해 왔던 생명의 텃밭이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의 첫 무대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자연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원형 그대로 녹아있는 곳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위적으로 물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자연 상태에서 물은 계속해서 아래로 흐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연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질서 있게 원래의 상태로 계속 순환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연에 서서히 먹구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바로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태초부터’ 질서 있게 순환하고 삶과 죽음의 사이클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자연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서서히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태초의 상태인 자연이 서서히 병들고 있다. 자연,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존재이다. 오늘날 인간의 지나친 욕심으로 거대한 자연의 숲은 인공적인 콘크리트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울창한 숲의 나무들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가차 없이 벌목 당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경제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의 푸른 숲을 없애고 그 자리에 대신 마천루를 세우고 빌딩숲을 조성하고 있다.
  자연은 하나님의 섭리와 질서가 녹아있는 터전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수단이나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질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만 흘러가야 한다. 자연은 원래부터 존재해왔고 그 원래의 출발은 하나님의 창조이다.
  하버마스(J. Habermas)는 자신의 저서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에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자연의 기술화’를 비판하고 자연발생학적인 것과 인간의 기술에 의해 제작된 것 사이의 범주의 차이를 점점 지워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본래적인 푸른 자연의 미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술적이고 공학적인 미래가 대체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미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미래가 아니라 기술과 생명공학으로 인한 유전자 조작과 생명의 기술화로 인해 변질될 미래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자연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은 완벽하고 더 이상 수정이 필요 없는 곳이다. 자연을 만드신 후, 하나님의 평가는 긍정이었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다. 자연에게는 인간의 기술이나 과학의 개입이 요구되지 않는다. 자연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의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으로 돌아갈 한 줌의 흑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가 전개되는 자연 안에서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갈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서 서서히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영역에 유전적인 조작 기술을 개입시키고 있다. 자연은 원래의 상태, 즉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세계에 개입한다면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 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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