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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교회와 예배의 결핍성(2)

기사승인 [515호] 2021.04.29  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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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영지주의의 위험성

 

Ⅰ. 디지털 영지주의 위험성: 현장성 상실

3. 예수님 말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이때라”에 대한 바른 이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음같이 말씀하셨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3). 온라인 교회 만능을 주장하는 목회자들은 이 구절을 현장 예배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현장 예배를 부정하셨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의 예배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 이후 기독교는 2천년 동안 교회당이라는 장소를 부정하지 않고 어느 곳이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2천년동안 교회당은 세워졌고, 현장 예배는 드려졌다. 예수님은 현장 예배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어디든지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는 전염병 감염 위험성 때문에 부득히 잠정적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코로나가 종결되면 모두 교회는 현장 예배로 되돌아가야 한다.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교인들이나 신앙추구자들을 위하여 운영될 수 있다.

II. 비대면 에배에서 성도의 교제 상실

대면이 부재한 일변도의 비대면 예배는 성도의 교제를 상실하게 한다. 온라인 상에서의 예배에서는 각 개인은 영상을 보는 하나의 관객으로 변모하고 성도들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상실되어 버린다. 교제란 사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귐과 성도 간의 신앙의 격려와 확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귐은 현장에서 신자들이 서로 간의 만남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장(場) 속에서 이루어진다.

성육신의 실재성을 강조한 사도 요한은 성도 사이의 사귐을 중요시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비대면 예배는 대면 예배에서 일어나는 성도 사이의 사귐과 교제를 주지 못한다.

III. 정서적 연결성 상실

현장 예배에서는 예배자들 사이에 인격적 정서적 연결성이 있다. 현장에서 모여서 드리는 신자들의 공동체는 단순히 각 개인의 집합을 넘어서서 공동체적인 연대성이라는 인격적 정서적 연대성이 있다. 이 가운데서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세워지는 것이다. 비가시적 교회는 가시적 교회 없이는 영지주의 교회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 칼빈은 지역 교회를 강조하면서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의 불가분적 통일을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 노마드 선교를 위하여 온라인 교회와 예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온라인 교회나 예배는 지역교회의 선교 보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현장 예배에서 느낄 수 있는 인격적 교제가 없다. 얼굴과 얼굴의 만남, 함께 부르는 찬송의 화음, 서로 간의 안부와 소통이 디지털 공간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눈과 눈, 귀와 귀, 입술과 입술 사이의 생동적인 소통이 없고, 목소리, 손과 손을 잡는 따뜻한 피부의 접촉이 부재한다.

사도 바울은 교린도교회를 향하여 몸의 성전을 강조하였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여기서 각 개인 몸이 성전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각 개인이 성령의 전(temple of the Spirit)이라는 교회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전은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몸이라는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이 성전인 몸을 음행(淫行)의 지체로 사용할 수 없다(고전 5:1, 16)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Ⅳ. 세례에서 물과 성직자의 부재

온라인에서는 세례식이 불가능하다. 세례받는 자와 세례 주는 자가 만나야 한다. 세례는 물로 이마에 뿌려진다. 이 물은 물질로서 디지털 화상으로 전달될 수 없다. 그래서 뿌려질 수 없다. 온라인에서는 실재의 구체적인 물이 없고 세례자와 수세자 사이의 만남이 없다. 때문에 온라인에서 진정한 세례가 시행될 수 없다. 온라인에서 물을 상징하는 표시물은 어디까지나 상징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육신의 신비란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신체를 입고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물질이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실재 물이 아닌 물을 지시하는 온라인 상의 인위적 표시물은 하나님 은총의 수단이 되기에 미흡하다.

V. 떡과 포도즙의 실재성 상실

성만찬도 바르게 시행될 수 없다. 성만찬에는 준비된 떡과 포도주에 성직자가 성찬 초대, 제정 말씀, 성령 임재 기도가 있어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철학, 숭실대 명예교수)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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