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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의 Book-Life

기사승인 [515호] 2021.04.29  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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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의 추월차선

     정원영 목사   (제일교회 담임)

'M J DeMarco'의 『부의 추월차선』(역:신소영, 축판:토드)에서 일부를 옮겨봅니다.

2007년, 어느 추운 겨울 아침,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워싱턴 D.C.의 기차역에 서서 여섯 곡의 바흐 작품을 연주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조슈아 벨로였다. 며칠 전 보스턴 콘서트홀에서 100달러 가까운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 있는 공연을 선보인 후였다. 조슈아가 바쁜 직장인들로 가득 찬 기차역에서 350만 달러짜리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안 2,000여 명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45분간 계속해서 연주했다. 단 6명만이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그의 연주를 들었다. 20명가량이 돈을 냈지만 이내 걸음을 재촉했다. 연주를 마쳤을 때 기차가 내는 소음 외에는 정적이 흐를 뿐이었다. 박수갈채도, 군중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가 진행한 이 실험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도 불편한 진실을 증명한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마저도 치열한 경쟁에 치이고 무관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발길을 끌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짧은 글 그러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고상한 척 연주회 자리를 가득 메웠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중적 가면을 말하는 듯 다소 냉소적인 기사 거리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연주가를 거리의 악사로 둔갑시켰을 때 대중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슷한 실험이 많이 행해졌고 결과 역시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라며 클래식적인 교양도 관심도 부족한 저 자신에 대한 위로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필요로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죠수아 벨로, 아니 더 위대한 이가 그 바쁜 출근시간, 그 혼잡한 역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 1-2분의 출근시간을 다투어야 하는 수많은 이들이 멈추어 설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오히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여러분을 위해 죠수아 벨이 좋은 음악회를 준비하여 무료초대권을 나누어 드립니다.”라고 했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케줄을 조정하고 음악회에 갈 만한 마음과 복장을 준비하고 멋진 음악과 연주자를 만나러 갔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중이 무지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실험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잘 못된 형식의 실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형식이 내용을 답보하지는 않습니다. 내용이 좋으면 형식을 앞서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상의 형식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형식이 갖추어질 때 좋은 내용은 최상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형식이 없는 내용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롭다는 복음, 그러나 정작 세상의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 십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런 면을 바라보며 교회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롭다는 복음, 그러나 정작 세상의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 십상입니다. 마치 어떤 공동 체면에 걸려있는 듯 교회와 성도들이 모인 곳에서는 복음이 세상의 그 어떤 지식과 사상과 철학과도 비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되고 있지만 교회와 성도를 벗어나면 바로 외면받는 현실에 맞닥뜨려지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형식의 문제가 아닐까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나 바쁜 그들에게 영원한 세계, 영혼의 세계가 있음을 역설하는 방식이 그들의 필요가 아닌 우리의 필요에 따라 그들의 방법이 아닌 우리의 방법으로 마치 실험하듯 접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형식에 좀 더 집중해 봅시다. 우리의 방식이 아닌 그들이 필요를 느낄 만한 형식을 만들어 내겠다고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지 못할 일도 아닐 것입니다. 한 젊은 목회자의 복음을 향한 고민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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