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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박사의 창문 칼럼(45)

기사승인 [504호] 2021.01.20  17: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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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낙중 목사의 삶과 사역

 

필자는 1980년 중반에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살았었다. 비탈진 언덕이 많아 장마철이나 겨울에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러지기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다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었던 곳이다. 그 당시 지금의 까치고개라는 정상 부근에 위치한 관악교회(현 해오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최낙중 담임목사님은 가난과 질병으로 소외된 성도들에게 사랑과 열정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다.

해오름교회 원로목사이자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바로세우기운동협회 이사장인 최낙중 목사를 소개하면서 그가 살아온 삶의 역경과 믿음, 그리고 그의 사역들을 통해 강력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최 목사는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 ‘용림’이라는 마을의 불신가정에서 태어났다. 술중독자인 아버지는 자살하려고 기찻길에 들어가 대낮에 기차를 세울 정도로 그의 가정 사정은 강 건너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였지만, 친척들이 모두 모인 제삿날 하나님의 역사로 우상을 버리고 아버지는 예수를 영접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정화수를 떠 놓고 삼신님께 빌고 무당을 불러 굿하고 점보기를 즐기며 우상을 숭배하던 어머니는 아들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한 후에는 제일 먼저 교회에 나가 새벽종을 치며 부족한 중에도 정성을 다해 목사님을 섬기는 권사님이 되셔서 최낙중 목사의 평생 목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셨다.

그가 다니던 시골교회는 고향인 ’용림‘마을에서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 구 역전을 지나 구례교를 건너 3km쯤 떨어진 신월리교회에 출석하였다.

최 목사는 학창 시절에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학업성적이 매우 뛰어났다. 인생을 고민하며 쓰러져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시골교회 담임목사님의 사랑과 설교 말씀을 통해 그의 영혼을 깨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네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청소년 시절에 낙중의 마음속에는 어두운 그늘의 그림자가 가득하였던 터에 진리와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의 소망을 찾았고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을 얻게 된 것은 전적인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그는 고백한다.

무속신앙이 뿌리 깊은 시골 마을에서 홀로 신월리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을 키웠던 그는 군에 입대해 갑자기 찾아온 결핵,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불면증 등의 합병증 병마로 믿음을 잃고 절망 속에 빠지고 자살을 결심하지만, 군목 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는 말씀을 듣고 자살은 실패하고 만다. 또한 그는 의사의 수술을 앞두고 전날 밤 졸도해 다음 날 의식이 돌아왔으나 결국 수술도 포기한 그의 목숨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보혈의 거룩한 피로 깨끗게 하셨고 그는 새롭게 얻은 새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께 바치기로 약속했다.

1972년 관악구 봉천동 버려진 천막교회에서 시작해 화재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로 나갔던 최낙중 목사는 가난과 절망을 하나님의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임시기도처로 시작된 해오름교회는 오늘에 이르러 4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고 매주 목요일마다 마커스 찬양집회를 통해 전국에서 찾아온 청소년, 젊은이들과 청장년들의 영혼 구원과 미래를 위한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바로세우기운동협회와 한기총 청소년지도자대학을 설립하여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청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데 헌신하고 있다.

그는 평소에 밝히지 않았던 가족사의 아픔을 저서 ’하나님의 지우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에 역사하신 살아 있는 간증을 담고 있다. 첫아들이 출생한 지 2년 만에 최낙중 목사가 두 평 정도의 베니어합판 작은 방에서 살고 있을 때, 둘째 아이가 한 쪽 귀가 붙어 있는 ’소이증‘으로 태어났다. 딸이 세 살이 되면서 자신의 귀를 의식하기 시작하더니 무의식적으로 귀를 덮으며 불안해했다. 최 목사 부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딸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수술해 주어야겠다고 정기적금을 2번이나 들었지만, 성령님의 감동으로 딸의 수술비 모두를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마태복음 6:33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22년이 지난 후에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고도의 수술 실력을 갖춘 박 철 교수의 집도로 성공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최 목사는 수술을 앞둔 금요철야 시간에 교우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였다. 성도들은 자기 일인 양 마음을 쓰며 수술을 마칠 때까지 수술비보다 더 많은 수술비와 기도로 차고 넘치게 보상해 주었다. 그 딸은 후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교회음악 사역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최 목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우선순위를 따라 행한 자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부어주신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 최낙중 목사의 고난과 역경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은혜와 감동의 사역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40여 년간 해오름교회 개척과 영혼 구원과 부흥의 사역을 위해 크게 헌신하고 2년 전에 원로목사로 은퇴를 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언제나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순간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삶의 현장이 전개된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만 추구하지 말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아무리 큰 고난이 도래한다 하여도 주님께서는 큰 은혜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최낙중 목사님처럼 삶과 사역의 현장에서 승리하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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