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젊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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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직신학과 영성의 결혼 천명: 영성 없는 신학은 무용건전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세 위격 모두에게 온당한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성부를 무시하면 성부의 예정과 예지를 무시하게되고, 그의 섭리와 주권에 대한 신앙, 하나님의 사역과 훈련을 상실하고, 하나님 가정 안에서 자기 탐닉에만 몰두하여 게으르고 버릇없는 신자가 된다. 성자를 무시하면 성자의 중보와 속죄, 천상에서의 간구를 상실하게 되어 율법주의에 떨어지게 된다.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께서 창조하시는 성부와의 교제, 인간 본성의 새롬게 하심, 확신과 기쁨, 성령의 은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 마을 이름이 애별愛別이라고 한다. 로맨틱한 시인이 그 단어를 놓칠 리 없다. <어떻게 된 일이길래 마을 이름이 애별인가/ 태어났으니 감옥이란 말인가/ 한 번 안아봤으니 이별 또한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저기 저 내리는 눈발의 반은 사랑이고 또 절반은 이별이란 말인가/ 어제는 미안해서 오늘은 이별을 하자는 말인가(후략)/이병률> 사람의 기억은 풍경 채집소일까,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저장된 소소한 풍경들이 마치 미래처럼 다가오곤 한다. 규서를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이제 생각하면 참으로 빛나는 청춘인
북한군에 체포되어 투옥된 박상건 이 말하기를 “일제 총독 정치 하에서 항거하며 투쟁하다가 옥사한 성도(聖徒)들의 뒤를 따라 오늘 우리도 유물주의에 반대하여 죽음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지키려는 것이오”라고 파견되어온 북한 공산당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유물주의와 죄악을 지적하고, 일장 설교를 하자, 경비원이 장총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내리치며 앉으라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그날부터 병석에 눕게 되었다.이에 격분한 투옥된 자들은 이날부터 단식을 시작하였다. 괴뢰들은 어디까지나 종교계 납치 인사들을 오로지 소위 기독교민주동맹에 가입시켜 정치적으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연꽃)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불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청정(淸淨)한 것을 비유할 때 연꽃을 든다. 연꽃은 진흙층이 쌓인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더럽혀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연꽃잎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잎에 떨어진 빗방울이나 아침 이슬은 잎을 적시지 못하고 동그랗게 뭉쳐서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표면에 있던 오염물이 물방울과 함께 씻겨나가기 때
Q 4:13 그러자 마귀는 그를 떠났다.시험이야기의 결언은 이렇게 전해진다. “그러자 마귀는 그를 떠났다.” 마귀가 시험을 마친 후에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것과 더불어 떠났다. 이것은 예수님의 수세사건으로 막이 오른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예수님의 공생애는 마귀가 시험 산을 떠나감으로써 시작된다. 특히 누가복음은 주로 갈릴리에서 전개된 공생애 동안에 마귀가 활동을 멈추고 있다(4:13)가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신 수난주간에 가롯유다에게 들어가면서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묘사한다.(22:3)누가
부르크하르트는 “실로 우리가 더욱 현명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길은 바로 역사를 통해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실로 "역사야말로 인간에게는 이성적인 자기 각성이다.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고 했습니다.파도는 밀려가고 또 밀려옵니다. 한 시대는 지나가고, 또 한 시대는 찾아옵니다. 이처럼 한 해가 저물면 한 해가 다시 밝아 옵니다. 우리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 빛이 되는 또 한 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새해의 역사를 맞이
Ⅰ. 김상준의 생애 “先生은 禮儀를 尊崇하는 가문에서 出生하섯음으로 그 禮儀를 嚴守하다가 一朝에 예수를 믿으시고 先祖의 奉祭祀를 廢하시매 嚴親에게 叱責과 鞭達을 無數히 당하섯고 온 門中이 問會를 열고 嚴責 恐喝하얏으나 如一히 信仰의 道를 직히심으로 乃終에는 그 嚴親께서 不孝의 子息이라 하야 獨子이지만 죽이려고 하실 때에 사람을 죽이듯 할 수 없다 하야 개 죽이듯 하랴고까지 하심으로 (멍석말이를 하랴 하얏음) 屢次 죽을 번 하얏으나 조금도 控折을 當치 않으시고 도로혀 信仰에 鍛鍊함을 받을 뿐이로서 ....”
당시 1970년대 복음주의자들은 “영성”(spirituality)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아니했다. 하지만 패커는 신학과 삶을 연결시키는 용어로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패커는 영성 단어를 기독교적 진리를 삶에 적용시킨다는 의미에서 청교도 개념에 가까운 현대적 등가어로 보았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성이라는 용어를 1968년부터 사용했고,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패커는 “영성신학”이란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분야라고 하기보다는 조직신학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
자그마한 아이의 꽃무늬 원피스는 엄마가 천을 떠서 재봉틀로 만들어준 옷이다. 옷에는 흙이 가득 묻어 있다. 돌작지 탓이다. 그때 아이와 아이들의 친구들은 공기놀이라는 이름 대신 "돌작지"로 불렀다. 돌을 가지고 장난하는 손가락 놀이라는 이름이었을까? 자그마한 아이는 돌작지에 혹해서 자주 꿈을 꾸곤 했다. 꿈은 현실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고 감정적이어서 꿈속에서 아이는 잘 운다. 물론 돌작지 하던 돌을 다 잃어버리고 난 후다. 울면서 돌을 찾으러 다니지만 돌은 없다. 모두 다 빗질한 땅이거나 돌작지 하고 난 후 맑게 씻겨진 땅들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한국 전쟁 취재로 풀리쳐상을 받으 하긴스(Hargneurite Higgins)가 중공군과의 대전으로 몹시 지친 해병 중대를 찾아가 얼어 붙은 콩알을 씹고 있는 어느 병사에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어떤 소원을 말하고 싶은가?” 그때 병사는 서슴치 않고 “내일을 달라” 라고 대답했습니다. 미래가 약속된다면 오늘의 고통은 아무 문제가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벌써 한해가 다가고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금년도 날마다 태어나고 죽고, 결혼하고 헤어지고 먹고 싸우고 그렇게 그렇게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