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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38)

기사승인 [481호] 2020.05.13  18: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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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법 하나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제주엘 가면 이제 많이 움직이지 않아요. 숙소에서 가까운 곳만 살짝살짝 다니죠. 관광지는 무조건 생략하고 유명한 곳도 가지 않아요. 지난번에도 애월 쪽에 자리를 잡고 서쪽을 벗어나지 않았어요. 자그마한 오름을 가다보면 가는 길이 내내 너무나 멋진 여행 이예요. 사람 없죠. 숲은 아무도 없으니 그저 내거죠. 그 숲이 그윽하기라도 해봐요. 사실 숲은 거의 모두 그윽해서 문제죠.  차 없는 길에 들어서면 아예 깜박이를 켜고 가요. 뒤에서 차가 오면 살짝 옆으로 벗어나며 먼저 보내요. 가다가 길이 예쁘면 그리 바로 핸들을 꺾어요.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낯선 동네를 기웃거려요. 그러다가 멋진 풍경을 만나기 십상이죠.
숲만 아름다운 게 아니고 농사지어진 땅은 얼마나 아름다운 정원인데요.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곳일수록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지죠. 더 이상 뭘 더 바라겠어요. 중산간 지역에 들어서면 거의 어디나 사람이 없어요. 제주를 찾는다는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딜 간 건지 궁금하기도 해요.
가령 일몰이 어여쁘다는 군산 오름을 가는데 길이 온통 어여쁜 정원이에요. 당오름은 거북이 등만큼 올라갔는데 차귀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 있던지. 이름 없는 오름 가는 길은 거의 좁고 협착해요. 한쪽으로 비키기도 혹은 비켜주는 길을 가기도 하지만 어디서 차끼리 그런 친절을 베풀고 베풂을 받아보겠어요. 자연스러움이 가득한 오름 찾아 가는 길에 들어서면 마음조차 부드러워지곤 하죠. 이름 없는 소박함이 더 좋아요. 소박은 자연스러움과 근수가 거의 비슷할 것 같기도 해요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니 오름 나라죠. 거인 설문대할망이 제주도와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했대요.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 틈새로 한줌씩 떨어진 흙덩이들이 오름이 되었다는 전설은 생각해볼수록 재미나죠. 흙 한 덩이의 오름이라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욕심이 푹 꺼지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상한 것은 아주 작은 오름이라도 오르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거예요. 
궁새 오름은 자연생태공원에서 시작되었어요. 생태라는 글자가 붙은 곳은 거의 다 좋아요. 특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죠. 정성들여 가꿔진 정원도 아름답지만 그냥 잡초들 막 솟아나는 그런 들판이 더 좋아요. 파주 출판도시 끄트머리에 있는 명필름 아트에 가면 한쪽 면으로 나대지가 좀 있어요.  그곳에 잡풀이 솟아나고 여름에는 하얀 개망초 밭이 펼쳐지는데 그 자연스러운 풍광이 명필름아트의 품격을 높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그런 자리들에도 촘촘히 건물이 들어서버리죠. 도시 땅은 날마다 죽지 못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거예요. 굳이 대단한 환경쟁이가 아닐지라도 땅도 존재를 지니고 있다면ㅡ 실제 땅은 존재하죠ㅡ그 땅도 사람처럼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호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백과 쉴 곳, 푸나무가 우리에게 필요하듯이 땅에게도 자명한 일이죠. 땅도 숨을 쉬어야 하고 빈터나 숲 산은 땅의 숨 터일 테니까,
생태공원은 다쳐서 영구장애가 된 독수리와 수리부엉이의 요양병원이기도 했어요. 날수가 없으니 그곳에서 보호해주고 그들은 삶을 영위하는 거죠. 처음 본 수리부엉이의 눈과 길다란 귀깃은 매혹적이었어요. 부엉이 치고는 엄청 큰 몸을 지니고 있었어요. 가까이서 본 독수리는 얼마나 크던지, 독수리가 고개를 살짝 움직이는데 세상에 목에 털이 없는 거예요. 그제야 대머리 禿자를 사용한 이유를 확실히 알았어요.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사체를 먹으니까, 병균에 노출될 테고 대머리는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방편인거죠. 할렐루야, 하나님의 섬세한 창조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죠.
우리 부부는 정말 알뜰한 여행을 해요. 사박 오일 동안 점심만 겨우 다섯 끼 매식을 했으니 아마 제주도 사람들이 알면 오지마! 라고 할지도 몰라요. 숙소도 원룸에 차도 제일 적은 차라 빌리는 값도 싸죠. 기름도 적게 먹죠. 주차하기 편하죠. 뒤에 사람이 없으니 의자를 뒤로 밀면 겁나 넓어요. 제가 은근 생태론자이기도 해서 진심으로 그런 소소한 것들이 좋고 편해요.
궁새오름을 오르는 길은 계절의 여왕답게 눈부셨어요. 청미래 덩굴을 만나기도 했죠. 연두 잎새 아래  노오란 아주 작은 꽃이 피어나 있더군요. 어렸을 때 많이 본 식물이니까 꽃을 보기도 했겠지만, 처음으로 자세히 바라보았어요. 아 세상에, 네가 이렇게 피어나서 그렇게 빨간 열매로 변하는구나, 갓 피어난 꽃이 순식간에 빨간 열매로 화하는....꽃의 시간 속에서 주님의 시간이 저절로 생각나더군요.  야트막한 전망대에 오르니 툭 트인 풍경이 펼쳐지고 그 아름다운 풍경이 내 안으로 수욱 들어왔죠. 다가오는 풍경을 즐기고 더불어 ‘풍경속의 나’를 생각할 수 있으니 최고의 여행이죠.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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