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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

기사승인 [461호] 2019.10.23  16: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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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 빛

                       위 영 작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는 잘 모르겠는데(무수한 상대성에 의하여 더욱!) 글에서 보이는, 글이 좋아하는, 시인이나 작가가 지향하는 좋은 사람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달빛 가득한 날, 친구 장회민을 찾아 나선 소동파는 벗과 함께 뜨락의 달빛에 젖습니다. 그러다가 정원속의 연못을 바라보니 물풀이 가득합니다. 아 그 물풀은 대나무와 잣나무의 그림자입니다. 어디든 달빛 없으리 어디든 대나무 잣나무 없으리. 허나 ‘우리처럼 한갓지게 달구경하는 사람을 들은 바(耳) 없으니 단지 적을 뿐이다(但少閑人如吾兩人耳)’ 그의 시는 작은 탄식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달빛>은 윤오영의 수필집 '곳감과 수필'에 나옵니다. 달빛 환한 밤에 일어난 아주 단순한 장면인데 품고 있는 풍경은 깊고 그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페이지도 채 안 되는 짧은 글인데 그 짧음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선스러운 묘사가 전혀 없는 담박한 글은 복잡한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는 제 독서법조차 가볍게 밀쳐내는 힘이 있습니다. 문학이 삶이라면 삶을 나타내 주는 것이 문학이라면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낙향한 어느 사람이 달빛 몹시 밝은 날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 집 문이 잠겨 있어 그냥 돌아서는데 맞은편집 사랑 툇마루에 한 노인이 앉아 달을 보고 있습니다. 달이 밝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노인이 차려온 막걸리 한 사발을 서로 나눈 다음 다시 달을 바라봅니다. 달빛이 좋다는 이야기 외엔 달빛에 대한 어떤 묘사도 없습니다. <이윽고,"살펴 가우."하고 노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다 보니, 노인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글의 끝입니다. 달빛처럼 외롭고 달빛처럼 고요한 끝입니다. 노인은 그대로 달빛이 품어낸 풍경이 됩니다. 풍경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가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스치던 글입니다. 풍경은 풍경으로 족한 것을요.
 윤오영이 일생을 두고 강조한 것은 문학 수필, 즉 詩格이 있는 글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 사소한 짧은 만남, 두루뭉술한 말 몇 마디, 급(?)낮은 막걸리, 커다란 사발 어디에 시격이 있을까요. 답은 달빛입니다. 달빛은 모든 만남 속에. 농주 속에, 사발 속에 거하며 그들을 싸안으며 달빛으로 그들의 격을 향상시킵니다. 동파와 장회민 달빛 아래 친구를 찾아 나선 이와 우연히 만난 툇마루 위의 노인 그들이 만나서 한 일이라고 오직 달빛에 젖는 일입니다. ‘달빛’ 이라는 ‘온전한 시’가 체화되는 순간입니다. 그림 읽는 버릇대로 추론해본다면 막걸리는 어느 술보다 달빛과 흡사해 보입니다. 사발도 이 세상 어느 그릇보다 달빛에 맞춤해 보입니다. 친구를 찾아 나선이나 툇마루에 앉아 달빛을 기리던 이도 달빛을 향한 열린 마음이 있었을 겝니다. 열린 마음으로 들이차는 달빛, 문득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전방에서 군복무 중일 때 한 겨울이었대요. 보초를 서러 나가는데 달빛이 마치 낯처럼 환하게 펼쳐져 있는 데 그 순간 너무나 세상이 무섭더라는... 사람의 자취 없는 세상, 눈부신 달빛, 적막이 가득한 교교한 달빛, 지인은 무서웠다고 표현했지만 나는「숭고함」으로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리 환한 보름달이 떠올라도 달빛에 젖을 수가 없습니다. 달빛 들이차야 할 창문으로는 희뿌여한 가로등 빛이 달빛 대신 우리를 파수하고 달을 따라 걸으면서도 나를 적시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가로등 불빛이니까요. 하긴 세상 속에 너무 깊이 잠들어 있어 소삭거리는 달빛이 나를 어루만진다 한들 독해진 피부가 깨어날 수 있으랴 싶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자 천국을 볼 것이니.....”마음이 가난해야 달빛도 제게 들어설 수 있는 걸까요?  
 서리 내리는 상강時입니다. 맑고 청랑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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