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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연재)

기사승인 [460호] 2019.10.17  15: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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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줄 알았으면.....

                    위 영 작가

국화분 하나를 샀습니다. 가을에 대한 일종의 예우였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빨갛게 열매 익어가는 남천나무도 없고 시들어가는 맨드라미도 없으며 찬 서리에 색깔 미워져가는 과꽃 한그루도 없다면, 그러니 가을 뜨락 없는 사람이라면 필히 국화분 하나는 사서 거실에 두고 ‘국향호흡’이라도 드문드문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주도에 가면 자생으로 크는 선인장 단지가 있습니다. 그곳엘 가면 선인장 국수 선인장 수제비 선인장 차 선인장 닭볶음...등등...온통 선인장 세상입니다. 해 저물 무렵 그 동네에 들어섰는데 그 때쯤 초록 선인장은 옅은 회색빛으로 변해가더군요. 엿기름이 쌀알 삭혀내듯 어둠이 빛을 삭혀내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둠이 삭혀낸 빛은 달콤한 감주처럼 몽환적인 색이 되더군요. 선인장도 그랬습니다. 그 밝은 회빛이 낮의 초록보다....더 마음속에 새겨지더라는 거지요. 그러니 호흡이라 하여 뭬 특별할 게 있겠습니까? 국향이 깃든 공기를 호흡하면 국향호흡이 되는 게지요. 정치하는 사람들의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운 말 바꾸기처럼 가벼운 어조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그네들에게는 없는 쓸쓸한 로맨스가 거기 자리하질 않는가요. 서글픈 대체요법이라 치더라도 그도 안하면 서운타며 가을이 나무랄 것 같기도 했습니다.  
 화분을 하나 고르고 난 뒤 핸드백을 여니 카드가 든 지갑이 없습니다. 분명 핸드백을 들고 나오면서 보라색 작은 지갑을 확인했는데요. 평소에는 카드와 운전면허증만 달랑 들어있기가 십상인 그 지갑에 오만 원 짜리 지폐도 두 장 들어있었어요. 차에 이미 화분을 실어놓아서 “어떡하죠? 화분 다시 내리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나중에 송금해드릴까요.” 했더니 떼먹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던지 보내달라며 명함을 주더군요. 운전을 하며 나의  행적을 뒤집고 또 뒤집어 보았습니다. 도무지 잃어버릴 곳이 없는 시간과 곳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시간이 어중간하여 예정된 음악회장으로 갔습니다. 생각해보니 카드도 돈도 없으니 주차료는 어쩐다. 다시 집으로 갈까 하다가 지인이 음악회를 온다고 한 기억이 납니다.  카톡을 했습니다.  ‘돈도 카드도 없어요. 이따 주차료 좀 주세요.’ 주차료뿐 아니라 음악회 팸플릿까지 사주시더군요. 집에 돌아와서도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지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카드 분실신고를 했고 주민등록증보다 더 부담 없이 지니고 다니던 운전면허증도 재발급 받아야 해서 머리가 조금 아팠습니다. 카드는 전화로만 되지만 운전 면허증은 직접 가야하니까요. 멀티테스킹은 고사하고 작은 지갑을 손에 들고 핸드백에 넣은 기억까지 선명한데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생각해보니 돈 십만 원도 그렇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 주는 건데요. 사실 며칠 전 지하철을 탓을 때 나이 많이 들어 보이는 뇌성마비 장애인 분이 전단지를 내 무릎 위에 놓았습니다. 멀리 나가서는 못하더라도 다가오는 사람에게 작은 거라도...가 내 삶의 작은 지론이거든요. 더군다나 그분에게는 왠지 마음이 더 가서 지갑을 열었습니다. 세상에 지갑을 보니 딱 오만 원짜리 두 장뿐이었습니다. 결국 인색한 마음에 못주고 말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에게 한 장이라도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인생 자체가 통째로 “이럴 줄 알았으면.....”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의 갈라진 혀처럼 보이더군요. 결론을 보고서야 깨닫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믿음 역시 과거의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진행형이자 결국은 미래에 완결되는 결론이니까 말이지요. 결국 삶은 무수한 선택인데....,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나의 삶인데... 가령 生이 촘촘한 스웨터를 하나 짜가는 뜨개질이라면 잃어버린 코와 빠트린 코로 인해 그 스웨터는 과연 온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지갑은 두어 주 지난 뒤 운전석 옆 조금 뒤쪽 기어 사이 작은 틈에서 발견되긴 했습니다만, 혹시 생의 끝에 가서 “이럴 줄 알았으면.....”후회한다면 어찌 될까,
 차가운 이슬이 내리는 한로가 다가와선지 마음도 몸도 서늘한 시간입니다. 총총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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