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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패러다임의 전환

기사승인 [562호] 2022.09.29  17: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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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9장 14~17절

박정수 목사(이수성결교회)

 ‘Paradigm Shift’란 말을 들어보셨죠?  ‘패러다임의 변화’ 즉, 생각의 틀을 전환하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에서 태어난 천재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AD 83~168년)’는 해와 달, 행성의 위치 계산법, 일식과 월식의 예측법을 개발하고 천동설을 확립했습니다. 천동설은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그 주변을 태양과 달과 행성이 돈다는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천동설이 나온 이후 1400년 이상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514년 한 성직자에 의해 ‘패러다임 쉬프트’ 즉 ‘생각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한 사람이 폴란드 성당 성직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입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금식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지 ‘금식’에 대한 견해를 넘어 구원의 조건이 ‘행함이냐 믿음이냐’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셨음에도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메시야’에서 ‘영적 메시야’로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지만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은 다윗왕과 같은 정치적 권력을 가진 왕을 기대했습니다. 

1. 당신의 제자들은 왜?

세례요한의 제자들 또한 경직된 종교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금식에 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 은근히 자신들의 경건함을 과시했습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14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엄격한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두 차례씩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고, 이러한 행위를 구원의 방편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율법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3:23)는 것입니다. 혈통이나 행위로 말미암는 인간의 의(義)로는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신득의(以信得義)를 강조한 바울은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행위에서 믿음으로, 인간의 의(義)에서 하나님의 의(義)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2. 신랑을 빼앗길 날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금식’과 같은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금식을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은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마 6:16~18절). 금식이 구원의 조건이나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금식하지 않는 자들을 비판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영적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빼앗기는 날에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15절).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의심 많던 도마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 20:28).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금식에 관한 논쟁을 잠재우며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17절). 발효되지 않은 새 술을 신축성이 없는 낡은 부대에 담아두면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하여 부대가 터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복음은 유대주의적 낡은 전통으로 수용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태양과 행성들이 돈다고 생각했던 천동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돌고 있습니다. 나 중심의 생각의 틀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후반전을 계획할 때에도 ‘내 욕심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나를 높일 것인가 하나님을 높일 것인가’를 심사숙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십시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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