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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생명의 말씀

기사승인 [554호] 2022.06.23  16: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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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가 품은 미래(왕상 16: 21-28) 

한국 전쟁이 발발했던 72년 전 6월 25일은 평화스럽고 평온한 주일 새벽이었다. 그 후 우리나라는 천지개벽한 것처럼 동남아에서 돈 벌러 몰려드는 나라가 되었다. 이상한 것은 72년 전 그날 아침 같은 기분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하다. 전쟁이 난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반도의 정세는 불안하기만 하다. 북한에서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전 세계의 시선이 다시 한반도로 집중하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때만 해도 곧 한반도에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한 쇼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이것 말고 정말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게 또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이 말을 했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를 답답하게 하고 있다. 마치 시계를 과거로 다시 돌려놓은 것 같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7년 동안 엄청난 치욕을 당했다. 국론이 분열되어 서로 싸우다가,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다가, 이런 치욕을 당한 거다. 그렇다면 이 치욕적인 역사를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았을까? 대원군은 철저히 쇄국 정책을 폈다. 당시 10만 명의 천주교인 중 1만여 명을 죽였다. 5년간에 걸쳐 각가지 명목의 세금을 거둬 경복궁을 건축하였다. 양계초는 조선 멸망의 일등 공신이 바로 대원군이라고 주장한다.   

“민비(閔妃)가 정사를 멋대로 염처(艶妻)가 날뛰어서 온 나라 사람들은 왕비가 있는 것만 알고 임금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 20여 년이 되었다. 민가들이 조정에 가득 찼고, 수년간에 민가들이 기가(起家)하여 백만장자 이상의 부자가 10여 명이나 되었다.”고 맹비난했다. 고종에 대해서도 ‘듣기 좋은 말을 하면 기뻐서 선택했다, 자립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호랑이를 이끌어 스스로 호위한다, 정견이 없이 반복을 좋아하며, 권위를 믿고 책임지기를 꺼리며, 시기가 많아 현신(賢臣) 등용이 없어 스스로 도울 수 없다, 역대의 나라가 망한 임금의 악덕을 모두 갖추었다.’고 악평한다.

멸망의 또 다른 원인으로 당파를 지적한다. ‘조선은 서로 정권을 쟁탈함이 매우 치열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방자하고 암매(闇昧)하여 세계의 대세가 무엇인지 모르며,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니 논할 것도 없다. 근 10여 년 동안에 외국에 유학하여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자는 모두 배운 것을 가지고 벼슬하기 위한 도구로 삼았다. 해외 유학생이 약 천 명이나 되지만, 지금까지 하나의 완전한 학교를 경영할 줄 모르고, 한 사람도 하나의 저서(著書)를 이룬 자가 없으며, 번역한 책도 별로 없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라가 망한 원인은 권력자들이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동시에 일반 백성들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뤘다. 일제 36년 동안 나라 잃고 노예와 같이 살아야 했다. 그런데 해방된 지 5년 만에 말이 안되는 6.25의 비극이 이 땅에서 발생했다. 전쟁은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 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의 준엄한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워싱턴 시티 한국 전쟁 기념관에는 이런 글들이 새겨져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우리나라는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기억하는데 우리가 망각한다면 후안무치일 것이다. 과거를 잊지 말라! 역사의 교훈이다. 힘을 길러라! 역사의 교훈이다. 항상 대비하라, 하나가 되라! 임진왜란, 한일합방, 6.25 전쟁 등은 우리의 아픈 과거가 주는 교훈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단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뿐일까?  

왕상 16장은 북이스라엘의 왕조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가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린 것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될 때, 이에 불복해서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세우면서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는데 여로보암이 죽은 지 26년 동안 두 번의 쿠데타와 4개의 왕조가 등장한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다. 그가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싸울 때 적진 앞에서 바아사가 반역을 일으킨다. 그는 여로보암 집안을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죽여버렸다. 

바아사가 왕이 되고 이어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른지 2년 만에 또 반란이 일어난다. 블레셋과의 전쟁 때 시위 대장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켜 바아사의 집안을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고, 그는 스스로 왕이라 선언했지만, 백성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전쟁에 나가 있던 군인들이 자신들의 장군 오므리를 왕으로 삼아 왕궁으로 쳐들어왔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 왕이 된 지 불과 7일 만이다. 30년 도 안되는 세월에 왕은 다섯 번 바뀌고, 쿠데타는 두 번 일어나고, 내전으로 국토는 황폐화 되었다.   

이럴 때 백성들은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안정! 제발 먹고 살게 해 줘! 누가 왕이 되어도 좋다. 제발 맘 편히 살게 해주라!”

그들의 요구는 이루어진 걸까? 오므리는 왕이 되어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나라의 법을 세우고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겼다. 오므리가 만든 법이 얼마나 합리적이라 수백년이 흐른 후 미가 선지자 시대에도 백성이 오므리 법을 따랐다고 할 정도다(미 6: 16) 그는 모압을 정복하고 국경을 넓혔다.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놀랍게도 열왕기서 전체 분량의 30%가 오므리 왕조 이야기다(왕상 16-왕하 12). 안정을 바라던 백성들의 소망은 이뤄졌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오므리를 다르게 평가했다. “오므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왕상 16: 25) 또 그의 아들 아합에 대해서도 “(아합은)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3)”라고 평가한다.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다른 신에게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 아닌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형이상학적이고,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을 베풀고 정의를 실현하며 백성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야 말로 신앙과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 아닌가? 오므리를 하나님이 내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을 배제한 채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을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시선이 이 땅을 떠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비극이고 가장 큰 절망이다. 오늘 우리가 불안한 것은 바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우리 동족들의 모습 아닐까? 코로나-19가 종식되니까. 다시 과거의 타락과 방종의 수치가 치솟는 모습, 하나님에 대해 아예 관심조차 없다고 말하는 젊은 세대들. 편하게 살고 적당히 즐기고. 하나님 없는 무신론의 한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만이라도 경성해야 한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처럼 우리가 바로 그런 신앙의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간단하다.

누구도 거들 떠 보지 않는 하나님의 시선을 이 땅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나님을 이 땅에 붙들어 매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성도의 사명도 간단하다. 통치자와 정치인이 외면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시선을 이 땅에 고정하게 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다. 나라 없이는 교회도 없다. 나라 없이는 성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민족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민족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 다짐과 각오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정인교 목사(강남성결교회)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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