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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47)

기사승인 [519호] 2021.06.10  15: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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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생명의 호흡과 혼

서울신대 제13대 총장, 동 대학 명예교수.

③ 영적요소: 야웨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 드디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생기는 히브리어로 ‘생명의 호흡(숨)’ (breath of life:Neshama hayim)이다. 즉, 티끌로 형성된 인간은 ‘생명의 호흡’이 들어와 숨을 쉬므로 생령, 즉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창조 행위에 의해 사람은 흙에서 조성이 되고, 거기에 신적 생명의 호흡이 스며들게 되어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호흡은 창조적인 생명력이다. 생명력과 호흡은 바람, 숨, 생명력, 영, 정서, 의지력을 나타내는 루아흐(ruach)이다. 바로 영적(靈的) 존재이다.

야웨 하나님은 사람의 내부에 바로 루아흐(영)를 ‘만들어 놓았다’(슥 12:2), 나무로 만든, 그리고 돌로 만든 우상 속에는 아무런 루아흐도 없으며 동시에 아무런 생명력도 없다. 루아흐는 야웨에게서 나와 야웨에게로 되돌아가는 ‘바람’이요, 동시에 인간 생명의 숨길을 끌고 가는 ‘힘’이다.

“만약 그가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의 루아흐(신)를 자기에 가져가고 자기의 호흡(네샤마)을 자기에게 끌어가면 그 때엔 모든 육체가 멸망하고 사람도 티끌(먼지)로 되돌아갈 것이다.”(욥 34:14-15).

결국 생명과 죽음은 루아흐에 달려 있다. 이 루아흐는 보이지 않는 ‘자립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서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루아흐와 인간의 루아흐는 역학적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④ 인간 존재 자체인 혼(nephesh): “흙(dust)으로 사람(basar: 육체)을 지으시고 생기(숨, 호흡: neshama-영: ruach)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Nephesh Hayah)이 된지라”(창 2:7). 여기서 “생령”(Nephesh Hayah)은 바로 인간의 혼(Soul), 혹은 인간 자체(Self)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루아흐:ruach)이 육체(바사르:basar)에 작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 곧 “산혼”(nephesh hayah-Living Soul)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살아있는 혼(nephesh hayah)으로 그것의 두 가지 요소는 물질적인 요소인 몸(basar)과 영(ruach)이다. 그러므로 몸만 있는 인간은 죽은 시체요.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물질일 뿐이다. 또 영만 있다면 그것은 인간일 수 없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 요소요, 숨이요, 호흡이다.

인간, 즉 사람이란, 육신과 영이 같이 있어서 존재하는 살아있는 혼(生靈: Nephesh Hayah)이다. 이 혼은 바로 생명이요, 모든 지(知). 정(情). 의(意)의 좌소(座所)이며,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전체를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육체와 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 곧 살아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혼(nephesh)과 영(ruach)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기보다 영은 혼의 원동력이다. 인간의 영이 육신을 통하여 지, 정, 의의 어떤 개성적. 인격적. 존재적 형태로 나타날 때, 그것을 ‘혼’이란 명칭으로 불렀다. 예를 들면, 물(H₂O)은 보이는 유동적 액체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수소 두 개(H₂)와 산소(O) 하나가 합쳐진 것이 전혀 새로운 형태를 가진 물(H₂O)로 나타난다. 수소만 가지고 물이라 할 수 없고 산소만 가지고 물이라 할 수 없다. 바로 인간은 흙으로 말미암는 육체(basar)가 생기, 즉 영(ruach)을 받음으로 한 인격체인 인간이 된다. 그래서 네페쉬(nephesh)는 분명 영(ruahc)은 아니고 네페쉬는 인간 모습 전체와 특히 인간의 호흡을 총망라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인간은 네페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곧 네페쉬 자체이다. 인간은 네페쉬로서 살아있다. 인간의 여러 감정들도 주로 네페쉬를 통하여 표현한다. 그것은 증오의 주체요(삼하 5;8, 사 1:14), 사랑의 주체이다(아 1:7, 3:1-4), 네페쉬는 슬픔을 느끼고 울지만(렘 13:17) 동시에 그것은 기뻐하기도, 야웨를 향해 환호하기도 한다(시 35:9).

박지현 편집국장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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