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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41)

기사승인 [454호] 2019.08.21  14: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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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는 중세봉건제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전환하는데 400년 이상이 걸렸다. 동양에서 가장 빨리 서양문물을 수용한 일본도 20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뒤이은 한국의 60년 민주주의 역사는 경제만큼 고도압축성장을 이뤘지만  동시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교회에는 민주적인 요소와 반민주적인 요소, 그리고 초민주주의적 요소가 공존한다. 교회의 사랑, 정의, 평화, 연대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때로는 교회가 민주적 제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오늘 한국 개신교회는 한국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성찰하여 사회에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 뒤이은 백색국가에서의 제외 등 대외 여건의 급변에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혹자는 100년 전과 같다 한다. 무능한 임금, 이미 우리보다 훨씬 앞선 경제력을 가진 일본에 대한 현실적인 인정과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펼칠 것을 언급하기도 한다. 심지어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전쟁 성노예) 문제 또한 현실적으로 수습해야 할 것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러다가 일본이 세게 나오면 독도도 나눠 가지자고 할 판이다.
읾본이 강하다고 일본의 비유를 맞추자는 사람들은 이걸 생각해봐야 한다. 일본보다 더 강한 나라들이 일본처럼 다른 나라를 함부로 모욕하고 굴복시키려 한 적이 있는가? 지금의 일본과 한국의 대립은 개인과 개인, 회사와 회사의 대립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라는 정치집단, 민족공동체의 대결이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국경이 있다. 국가의 슬픔과 공동체의 고통을 폄훼하는 자들은 21세기 신종 사대주의, 개화를 가장한 기회주의자들이란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오늘의 갈등과 혼란이 심화될수록 교회가 할 일은 지금의 혼란을 야기한 100년전 교회의 원죄에 대해서 끝임없이 회개하고 또 회개하는 행동부터 시작하여 민족의 아픔과 오늘의 혼란을 보듬어야 한다.  3.1운동 직후부터 일제의 문화통치정책에 의해 변절자들이 급증하여 최근에 연구한 바에 따르면 김좌진, 김원봉의 비서들 중에도 밀정이 있었다고 할찌라도, 교회가 일본의 군국주의에 세례를 주고, 앞장서서 선봉장 노릇을 한 것은 주님의 날이 임할 때까지 기독교지도자들이 늘 민족 앞에 사과하고, 또 보상하고, 다시는 이런 과오를 겪지 않도록 역사교육과 시민의식을 강화시켜야 한다. 한국의 이름이 있는 한 우리는 한국교회로 존재한다.  솔로몬의 부귀영화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가 더 귀하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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