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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76)

기사승인 [610호] 2024.03.29  19: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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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임금님께

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편지, 참 좋은 글태입니다. 단순히 좋다기보다는 사랑스러운 장르이기도 하지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그런가 하면 길어도 되고 짧아도 되는, 시처럼 깊은 사고를 담거나 낭랑하지 않아도 되고 산문처럼 지성을 담거나 고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소설처럼 삶의 행간이 녹아있지 않아도 됩니다. 철학적일 필요는 더더욱 없구요. 물론 어떤 철학서보다 더 심오할 수도 있습니다만, 편지는 깃털처럼 가볍고 물처럼 고요한 장르이지요. 무엇보다 타인을 아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구요. 더불어 다정하기 이를 데 없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병처럼 앓게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또 깊은 무게를 지닌 글이 편지가 아닐까 싶은게 무시무시할 정도로 자신을 드리는 고백록이기도 하지요. 이래저래 편지의 품새 넉넉하기가 독수리 날개 같습니다.

<원임제학 채에게, 상림원에서 수확한 쌀 네 말 경기도 농만이 수확을 못 해 곡물값이 금값이라 황량한 교외에서 지내기가 궁핍하리라. 유독 이 금원의 벼는 큰 풍작이니 이에 몇 말 보낸다. 사소한 것이라 부끄러우나 기념하는 뜻을 생각해주지 않으려는가>실각한 채제공에게 이런 어찰이 당도했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적혀있더군요. 쌀과 함께 한 편지는 지존의 배려였으며 은혜이며 가문의 영광이었겠지요. 그게 어디 단순히 편지이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예찰을 즐겨 쓰신 정조 임금님, 당신께서 원손 시절, 숙모님께 드린 편지는 므흣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뵈완디 오래오니 섭 그립사와...> 정말 제왕의 격은 아주 어릴 때부터 고아하구나 싶더군요. 여덟 살 나이에 그리움을, 그것도 섭은 그리움을 아셨다니, 그리움은 사람이 지닌 가장 깊은 서정성이 아니겠습니까, 그 풍부한 정서가 몸이 자라나듯 자라나 깊고 그윽한 아취 있는 사람이 되질 않겠는지요.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부지런하게 적으니 퍼낼수록 샘물 맛있는 물이 되어가듯 맛있는 사람이 되어가셨겠지 싶더이다. 그러하와 만고에 회자하는 명철하신 임금이 되신 것이라.

임금님께서는 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심환지에게 4년여에 걸쳐 무려 350통이 넘는 어찰을 쓰셨지요. 어찰 속에서 일이 너무 많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하신 임금님께서 그 많은 편지를 써내시다니요. 설날 숙직하는 병조판서에게 보낸 글도 유려합니다. <긴긴 밤을 종알종알 떠드는 자들과 맞대고 있을 터이니 기분 돋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민요에 소녀들이 별을 세며 별하나 나하나 라고 하던데 이 세찬을 앞에 놓고 병조판서가 한 해를 보낸다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므로 민요에서 말한 것과 정말 똑같으리라.> 임금이 신하에게 보내는 이런 애틋한 사랑편지라니, 구중궁궐 깊고 높은 곳에 외로히 거하시면서도 소녀의 감성을 지니신 임금님 아이, 귀엽고 사랑스러우셔라.

감히 천하제일이신 자신을 이름하여 이놈! 이란 단어를 스스로 쓰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팔뚝을 걷어붙이고 분개한다! 고도 하셨더군요. 또한 자신의 성격이 태양증이라고 자체 분석적 성찰도 하시고 그래서 마음의 상태가 얼굴에 잘 나타나며 바로 폭발한다고 토로도 하셨더군요. 뿐만 아니라 욕도 하고 거친 말을 발하기도 하지만(어느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만) 그래도 편지쟁이이신 임금님께서는 아주 정적인 분이 틀림없어요. 편지야말로 조급한 마음에서는 절대 안 되는, 고요해야만 쓸 수 있는 글이거든요.

친애하는 임금님께서 편지 중에 가끔 쓰신 껄껄(呵呵)은 아마도 요즈음 사람들이 즐겨 쓰는 이모티콘의 효시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呵呵 아마도 지금 세상에서 우연히 임금님을 만난다면 시쳇말로 임금님은 딱 내 스타일이십니다. 저야 감히 임금님 스탈이겠습니까만, 그래도 임금님께서는 이다지도 다감하시니 속으로는 고개를 뒤흔실지라도 정원에 피어나는 매화의 향기를 따라 잠시 거닐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봄이고 꽃은 무섭게 피어날 것이고 오늘 봄비는 나직하고 그윽하게 오시는 중이니, 세상은 온통 부활時로 들어서 있으니 말입니다. 呵呵 /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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