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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 ‘하나님 나라’ 입국 절차로서의 세례와 성찬(2)

기사승인 [610호] 2024.03.29  14: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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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스 교리교육 강론 미스타고지 중심

김선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테오도로스의 생애, 사후 평가, 연구 동향

1. 테오도로스의 생애 및 사후 평가

테오도로스는 마음을 다잡고 돌아왔고, 학문과 금욕주의적 훈련에 다시 전념했다. 383년에 사제서품을 받았고, 392년에 몹수에스티아의 주교가 되었다. 테오도로스는 학자로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마케도니오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성령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는 정통파 입장의 대변자로 선택되었다. 그의 설교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했다.

이렇듯 테오도로스는 살아생전에 가장 헌신적이고 학식을 갖춘 성직자요 신학자 중 한 명으로서 널리 칭송받다가 428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그리스도론 및 성경 해석 방법 때문에 테오도로스는 특히 알렉산드레이아 학파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동방에서는 삼위일체론과 관련해 세 위격의 동등함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에 대한 논쟁이 로고스와 그리스도의 연합 성격을 규정하는 논쟁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4세기 말 즈음에 니카이아 신경(325)은 정통파의 규범적 신앙고백으로 그 권위가 공인되었다.

하지만 규범으로 인정받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다. 니카이아 신경에 동의하면서도 각기 다른 그리스도론을 내놓았고 서로 이단이라 고소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테오도로스는 로고스와의 연합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안티오케이아 학파의 대변자였다.

테오도로스가 사망한 지 3년 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놓고 네스토리오스(Νεστόριος)와 알렉산드레이아의 키릴로스(Κύριλλος)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6세기에는 정교회와 비칼케돈파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비잔틴 제국이 분열되고 있었다.

양측을 화해시키고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543/544년에 테오도로스의 글을 포함해 “삼장”(三章, tria kephalaia)을 단죄하는 칙령을 발포했다. 테오도로스에 대한 단죄는 비칼케돈파에게 칼케돈 공의회는 네스토리오스주의적이지 않고 보편적 공의회였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황제는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에게 공의회 소집을 강요했다. 이로 인해 553년 5월 5일,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교황이 참석을 거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첫 회기에서 참석자들은 테오도로스의 적대자들이 그의 글에서 가져온 71개의 “의심스러운” 발췌문을 청취했고, 이것을 그가 이단임을 입증하는 자료로 받아들였다. 공의회는 6월 2일에 종료되었고 삼장을 단죄했다.

2. 테오도로스에 대한 연구 동향

553년 이후 여전히 테오도로스와 그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긴 이들은 대부분 동시리아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유명한 니시비스 학교(School of Nisibis)는 현재까지도 테오도로스를 가르치고 기억하는 중심지다.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에서 테오도로스의 작품은 처음에 북아프리카와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테오도로스의 바울 소(小)서신 강해와 다른 라틴어 발췌본들이 현존하는 것도 이들이 번역본을 남겼기 때문이다. 1861년에 미뉴(J.-P. Migne)가 테오도로스를 단죄하는 데 사용된 발췌문과 그의 글을 인용한 주석집들에 실린 구절을 모아 출간했다. 19세기 후반에 역사적 예수에 주목한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중시한 테오도로스를 다시 찾아내고 현존하는 단편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 자하우(E. Sachau)와 스웨트(H.B. Swete)가 테오도로스의 작품 두 편을 추가로 내놓으면서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이와 함께 1932년에 발견된 교리교육 강론도 테오도로스의 신학적 사고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는데 좀 더 폭넓은 관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연구를 촉진했다. 맥켄지는 최신 자료에 근거해 테오도로스를 단죄하기 위해 사용된 발췌문의 진위를 가려야 한다고 확신한 데브리스(R. Devereesse)의 ‘새로운 연구’를 소개하고 그 의의를 부각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음 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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