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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 (31)

기사승인 [609호] 2024.03.21  07: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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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스

복된교회 담임

2월이 서둘러 짧은 꼬리를 감아 사라지자 마당 가에 심은 매화가 피었습니다. 꽃 그리운 시인의 감성으로는 화들짝 반갑습니다.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라도 향이 흩날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코 들이밀면 반가운 마음에 화답이 될 만큼은 향을 내줍니다. 메마른 가지에 돋은 꽃 색이 생경하여 곱고 비밀스러운 향기가 아련하지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니 걱정도 붙습니다. 그리 얼어버리면 매실을 낳지 못하지요. 꽃만 곱기보다는 결실을 바라는 마음이어서 조바심이 섞이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으로 관찰하니 아직 영하의 냉기가 채 가시기 전, 고운 얼굴을 내민 매화가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치기(稚氣)로도 읽힙니다. 지나치게 젊은 정치인들의 뛰어난 재주를 보는 마음 같은 거요. 대견해도 염려가 늘 끼어듭니다.

본디 꽃샘추위라는 게 있어 온 이 땅을 살아온 바이니 그 추위를 잘 견뎌 주기를 바라는 따순 마음으로 애처로운 꽃 마중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만 쓸데없는 생각은 잘 멈추지 않아요. 생각을 도닥거리니 추위만 문제가 아니군요. 매화를 찾아 줄 벌 나비가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벌 나비가 중신해 줘야 결실을 이루는 바이니 철없이 일찍 게워 낸 매화는 그야말로 시간을 잘 못 타고 난 녀석입니다.

속절없이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 합니다. 헬라어구요. 제우스의 아버지 이름이랍니다. 크로노스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잡아먹습니다. 흉측한 표현이지만 어쩌면 흘러가는 시간이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는 표현이 아니겠어요? 오늘날 ‘크로노스 타임’은 객관적으로 계량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표현하는 어휘가 되었습니다. 그런 폭군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미의 지혜로 아비에게 잡아 먹히지 않은 유일한 아들이 후에 올림포스의 왕이 되는 ‘제우스’고 그 제우스가 낳은 막내아들은 ‘카이로스’입니다. 앞머리가 무성하여 얼굴을 가리는 반면 뒤는 민머리래요. 그 이름을 딴 ‘카이로스 타임’은 기회의 시간, 의미의 시간 뭐 그런 뜻입니다. 시계나 달력으로 계량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지만,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의 뒷머리가 민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며, 나의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왼손에 저울이 있는 것은 일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하라는 것이며, 오른손에 칼이 주어진 것은 칼날로 자르듯이 빠른 결단을 내리라는 것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다”

사람이 지어낸 말이지만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귀히 여길 마음을 다시 한번 여미게 하는 말입니다.

마당의 매화가 말 걸어와 긴 사색에 잠겼다 깼습니다. 다시 아침이 열려 영하의 날씨를 견딘 녀석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밤새 안녕?’ 새벽 칼바람 속에서 꽃님은 의외의 대답을 던집니다. ‘너는 잠이 오냐? 이 난리 통에?’ 벌 나비 안 오는 심통인 듯 싶었지만 고래로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음)이라는 말처럼 꼿꼿한 녀석의 말이어서 화들짝 놀랍니다. 이유 모를 부끄러움 무릅쓰고 코 대신 귀를 들이댑니다. 꽃님은 그 청명하게 고운 자태에 어울리지 않게 불퉁거립니다. 영하의 날씨만큼 매섭습니다. ‘야당, 여당 모두 총선 준비에 나서 붙은 눔 떨어진 눔 뒤섞여 우여곡절이고 의사는 의사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의견이 달라 치료받을 환자들만 볼모 된 이 모양을 보고도 두 다리 뻗고 잠만 자냐?’ 심술 아닌 힐난입니다. 그거 말고도 두어 마디 더 나를 쥐어박는 사연은 부끄러워 감춰 두는 중입니다. 그냥 지는 건 싫어서 ‘너는 네 때도 모르고 기어 나와 웬 강짜냐!’고 되받았습니다. 벌 나비 잠든 때 기어 나와 열매 놓친 꽃님이의 카이로스를 따지고 든 것이지요. 녀석도 좀 기가 죽었을걸요. 시린 손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서는 나의 카이로스를 살핍니다. 제법 긴 연조를 목사로 살아 낡은 사고와 행여 열매 맺지 못할 꽃만 피우는 건 아닌지 조바심 섞어 꽃님이의 결실을 위한 벌 나비처럼 나의 결실을 위한 성령님의 때를 더 사모해야겠다는 결기를 세우는 바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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