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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75)

기사승인 [609호] 2024.03.21  07: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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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라고 슬픔 없을까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작고 여린, 아름다운 것들 속에는 거의 언제나 슬픔이 고여 있다.

양지바른 쪽에서 제비꽃이 한두 송이 피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른 봄부터 봄 여름까지, 어디에서나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 제비꽃은 제비가 돌아오는 때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오랑캐를 주의하라는 뜻으로 오랑캐꽃이라는, 체구에 맞지 않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제비꽃에는 폐쇄화가 많다. 늦봄이나 여름에 피어나는 제비꽃은 꽃잎을 아예 열지 않으며 제꽃가루받이를 해서 열매를 맺는다. 세상이 온통 눈부신 꽃 천진데 어느 벌 나비가 지표면 바로 위의 작은 꽃에 마음을 주겠는가, 제비꽃은 그런 자신의 처지를 미리 알고 자가 수정을 해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는 것이다. 저 작은 꽃이 세상을 알고 때를 알고 벌 나비의 마음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명 있는 것 치고 존재에 대한 열망 없는 것 있으랴만 콩만 한 제비꽃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눈물겹기도 하다. 어느 부분, 자신과 환경을 알아서 꽃잎을 열지 않는 제비꽃의 생태는 존재에 대한 섬뜩한 성찰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오직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이면서도 너무나 미약한 존재인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 사순절 기간이다. 이 무렵이면 들춰보는 그림 중 하나가 바로 카라바지오가 그린 ‘시몬 베드로의 부인’ 카라바지오는 특히 빛과 어둠, 그 대비에 의한 극적인 표현 ㅡ테네브리즘ㅡ을 즐겨 사용한 작가이다. 때는 예수님 잡혀가신 날 밤이고 무대는 제사장 집 마당. 세상은 이미 어둠으로 가득하다. 두 사람의 얼굴에만 강렬한 빛이 비치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로마 병정은 어두움 속에 있어선지 매우 위협적으로 보인다. ‘이 사람 예수당이에요’ 여종은 냉정하고 무심한 눈빛으로 두 손가락을 들어 베드로를 가리키며 병사에게 말하고 있다. 병사도 베드로에게 손가락을 들이대며 다짐하듯 묻는다. 당신 맞아? 예수당? 베드로는 두 손 전체를 들어서 ‘나? 나라고? 아냐, 나 아니야,’ 틀림없이 말을 더듬었으리라. 깊게 팬 주름에는 절절한 고뇌가 엿보인다. 성경에 보면 베드로의 부인은 점점 강도를 높여간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여종이나 병정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살짝 아래를 향한 그의 시선은 베드로의 회한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 곁에서 그토록 강렬한 충성을 맹세하던 베드로는 어디 갔을까,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이게 지금 나인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아마도 자신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표준 새 번역에 따르면 세 번째 부인은 이렇다.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하오. 하고 잡아떼었다.’ 바로 그때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는 땅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이스라엘에는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라는 말씀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교회 탑에 닭이 꼿꼿하게 서 있다. 칼리칸투는 로마어로 닭 울음소리 뿐 아니라 예수님 수난에 대한 슬픔, 눈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교회의 첨탑 위에 닭이 많이 있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옥상 정원에도 엄청나게 푸르고 엄청나게 큰 닭이 있었다.

화가들이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풍경이나 사람 속에 감추어진 내밀한 <속>이다. 파울 클레도 말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보

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 사람의 속성이 된 슬픔, 열매를 위해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 폐쇄화처럼 생의 심원에 자리자리하고 있는 근원적인 슬픔. 카라바지오도 부인하는 베드로를 통해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사순절은 슬픔의 시간이다. 닭이 울고 베드로와 눈빛이 마주치는 예수님을 기억해야 하는.....한 송이 제비꽃도 칼리칸투. 닭울음 소리가 될 수 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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