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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62)

기사승인 [505호] 2021.02.04  11: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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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작은 집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특별히 당신에게 내 집이 생겼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이 아무 때나 들어설 수 있도록 언제나 대문을 열어 놓겠다. 주인이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은 집이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혼자와도 좋고 당신의 친구와 함께 와도 좋다. 이른 아침도 괜찮고 아주 늦은 밤도 무방하다. 이렇게 차고 매운 겨울날도 괜찮고 봄꽃 흐드러지게 피어 꽃에 취한 걸음걸이로 삐이걱 대문 열어도 좋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아주 오래된 집 이야기가 하고 싶구나. 아주 어렸을 때, 아래는 서랍이고 위는 여닫이로 된 자그마한 장롱이 하나 있었다. 키가 작아서 서랍 문을 하나쯤 열고 그 위에 올라서면 여닫이농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폭이 작은 농이었기에 그 안에 들어가면 내 작은 다리조차 조금 구부려야 했다. 나는 그곳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홀로였지만 아늑하고 따스하던 곳, 식구들 옷도 걸려있고 이불도 놓여 있는 통속에 가만히 누우면 송판 이어진 틈으로 자그마한 빛줄기가 스며들곤 했다.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빛줄기는 눈부셨고 장롱 안은 그 빛으로 인해 어슴프레 밝아져 왔다. 바깥세상의 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몸은 부드러운 구름에라도 휩싸인 것처럼 편안했다. 그 가느다란 빛살 속에서 크고 작은 먼지들이 두둥실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는데 아, 빛은 먼지를 좋아하는구나. 먼지도 빛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뜨락에 커다란 감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비 온 뒷날이면 말갛게 씻겨진 땅 위에 감꽃이 떨어져 있었지. 엄마는 감꽃을 실에 꿰어 아이에게 반나절 목걸이를 만들어주시곤 했다. 마루가 조금 높았고 그 마루 밑에는 북두라고 부르는 개도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부엌문은 아주 크고 길었다. 마당에는 펌프 샘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여름날 마루에 가만히 앉아서 바라다보고 있으면 펌프 샘의 기다란 손잡이는 마치 머리 묶은 처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중물을 보내야만 물을 주는 수줍은 샘물이었다.
 식물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했던 것도 집이었다. 장마철인데 무슨 일인가로 집을 한 며칠 떠나 있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담장에 무수하게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호박잎들. 굵고 넓게 자라나 있는 꽃 진 자리에 솟아나 있는 자목련 잎들, 둥글둥글 커져 있는 박태기 이파리들, 나뭇가지 여기저기를 헤집고 올라서는  오이순들, 어두움이 그들 웃자란 식물들에 깊고 넓은 위엄을 주었던 것일까. 며칠 만에 무성하게 자라 있는 식물들은 낯선 점령군처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주기도 했었다.


 어느 집에든 들어가면 특유의 냄새가 있다. 요즈음은 잘 씻고 청소도 잘하고 환기와 함께 무수한 방향제들의 요살 덕에 점점 그 향들이 사라져 가긴 하지만.... 길을 가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다가왔다. 어디더라? 언제더라? 아아, 그 집, 한 아이가 다가왔다. 모르는 아이였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 혹시 영선이 동생 아니니? 맞는데요?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만의 특이한 향취가 있다고 하면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다수의 사람이 그 사실을 모욕적으로 느낄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신을 가리기 위하여 향수를 사용한다. 그러나 가려진 사실은 어린아이가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가만히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를 손으로 잡는 것과 같다. 잡았는가 하면 손은 비어있고 빛줄기는 여전히 그대로인.....


  뜨락엔 내가 좋아하는 꽃들과 나무를 심었다. 잘 키워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맘대로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을, 연보랏빛 몸통에 흰빛을 깔고 노오란 점들이 박혀있는 주름잎 꽃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그러나 대다수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길가의 잡초일 뿐이다. 이제 그런 사소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초라한 집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그저 내 그릇이려니 하겠다. 바람도 스쳐 지나가고 나비도 스며들었다가 제 갈 길로 가겠지. 걷다가 피곤에 지치면 마루 위에 무연히 앉았다 가셔도 된다. 설령, 뜨락의 꽃들에게 너 참 참 못생겼구나. 중얼거려도 그러려니 하며 서운해하지 않겠다. 문은 들어오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떠남을 위해서도 있다. 
 <속삭이는 그림들>은 내 작은 집이다.  열린 그 집 문은 기다림 중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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