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쓴물단물>

기사승인 [617호] 2024.06.26  14:40:37

공유
default_news_ad2

죽은 후에 ‘범은 가죽을’,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영예스럽지 못한 인생으로 ‘한 줌의 재’도 편안히 묻힐 땅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돈 앞에선 인정사정이 없는 세태 속에서 기부하고 조용히 떠난 분들이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국민의 품에 안겼던 손창근씨(95세)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문화유산과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면서도 세상에 드러나는 걸 꺼려 ‘얼굴 없는 기부왕’으로 불렸던 그는, 용인의 1000억 원대 임야 200만 평을 산림청에 기부할 때, 사진 한 장 노출하지 않았고, 마지막 가는 길도 유족들이 그의 뜻에 따라, 기부했던 기관에도 부고를 전하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515억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정문술 회장(미래산업)이 지난 12일 별세했다.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정문술 빌딩’ 준공식(2003.10.30)에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축사를 부탁하고 감사패를 증정하겠다고 했지만 휴대폰도 꺼놓고 아예 불참했다. 2014년 KAIST에 현금 100억 원과 115억 원 상당 부동산 등, 215억 원을 추가로 기부한다고 밝힌 후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겠다’ 약속했지만,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변했다”며 “이번 기부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승리,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했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했던 고인들의 기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천지’(?)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거론하여 인간내면의 수치스러움에 대해 설명했다. 부끄러울 치(恥)라는 글자를 설명하면서,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은 중대한 일(恥之於人大矣)”이라고 했다. 주자(朱子)도 “사람이 부끄러운 마음을 잃어버리면 짐승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했다. 어떤 잘못에도 수치스러움을 모르고, 얼굴이 두꺼워 철판을 깐 듯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후안무치(厚顔無恥)’니 ‘철면피’라고 말한다. 짐승은 자각하는 양심도 없고, 어떤 경우에도 부끄러운 마음,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작금의 현실이 슬프다.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범법자인데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법망을 피해 보려고 난리고, 국민이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는데도 반성도 사과도 없다. 지도자 아닌 ‘가해자들’이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다. 잘못하고 느끼는 부끄러움, 죄를 짓고 느끼는 수치심을 어떻게 온전히 감출 수 있겠는가. 부끄러움을 아는 세상으로 회복됐으면 한다. 미국 남서부에 거주한 나바호족의 금언이 가슴을 때린다. “네가 세상에 울면서 태어날 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는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살라“ 뭘 남기려고 가해자들은 저리 난리인가.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