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자유기고> 수필 / 꽃이 진 자리에서만!

기사승인 [610호] 2024.03.29  19:46:06

공유
default_news_ad2
김광일 목사(전주 온빛교회)

교회당 앞 작은 화단에, 기어이 겨울을 졸업한 매화가 하얀 얼굴을 수줍은 듯 내미는가 싶더니 차마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총총걸음으로 떠나버렸습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묻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은 사연이 적지 않았습니다. 화사한 얼굴 너머로 마음에도 봄이 왔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칼바람이 마음을 할퀴어 속살까지 아팠을 날들을 어찌 견디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가혹한 추위 속에서도 향기를 팔지 않았던 ‘매불매향(梅不賣香)의 비결’도 듣고 싶었습니다. ‘눈(雪)물’과 ‘눈(目)물’이 겨우내 내가 먹었던 양식이었다는 말은 매화 꽃에게만 살짝 들려주고 싶은 나만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은 묻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습니다. 꼭 듣고 싶은 대답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꽃자리를 서둘러 떠나는 이유였습니다. 정말이지 그 이유만은 꼭 듣고 싶었습니다.

작별 인사도 없이 이리도 급히 떠나버릴 줄 몰랐습니다. 알았더라면 달 없는 밤에라도 등불을 밝힐 걸 그랬다는 아쉬움에 한동안 마음이 아렸습니다. 어쩌면 아쉬움과 후회는 언제나 호기(好期)를 놓쳐버린 이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는 땅에만 내리는 게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여러 날 동안 창문을 세차게 두드려 대는 봄비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말없이 떠난 이들을 향한 서운함과 그리움이 비가 되어 가슴에도 내리고 있던 까닭입니다.

햇살이 물빛처럼 맑은, 비가 갠 날의 아침에 기적을 만났습니다. 기적은, 속절없이 떠난 매화꽃 자리에 연초록 색깔로 화장하고 나타난 얼굴이었습니다.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꽃 진 자리에 태어난 찬란한 생명이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 자태였습니다. 왈칵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대답이 그 자리에,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속절없이 제 자리를 떠났던 꽃의 마음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초록빛 생명이 꽃 떠난 이유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꽃이 져야만, 생명이 피어나는 거랍니다.” 생명이 피어나도록 꽃이 자리를 비켜 준 거랍니다. 더 찬란하고 화려할수록 일찌감치 그 자리를 떨쳐야 한다는 거랍니다. 하여, 생명을 위해 기꺼이 꽃자리를 내어준 것이랍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설명하면서 네 번째 단계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라고 지목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고 싶고,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두가 꽃자리를 원한다는 것이지요. 격한 세상 속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우아하게 살아가려 몸부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 한 순간이라도 찬란한 꽃을 피우기 위함이지요. 소쩍새 우는 소리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함이라던 시인의 노래는 정직한 고백입니다. 때깔 고운 모습의 꽃자리에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보고 싶은 지극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칼바람도, 비바람도 오로지 개화(開花)만을 위해 참아낸 게 아니듯, 기필코 인생의 쓰라린 시간들을 견뎌낸 것은 그저 인정받기 위한 열망 때문만은 아닙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는 말이 있듯이 꽃은 피었다 지기 마련입니다. 오래가는 꽃은 있을지언정 영원히 가는 꽃은 아예 없습니다. 꽃은 생명이 내려앉도록 잠깐 자리를 지키다 떠나는 게 운명이자 사명입니다. 그 자리를 영원한 자신만의 자리라고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서만 생명은 초록빛 잎새로, 탐스러운 열매로 익어갑니다. 십자가는 죄로 인해 죽음으로 질주하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찬란하게 꽃핀 자리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없으며, 영생도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요, 기독교 신학의 정수가 십자가임은 선명한 진리입니다. 조심스러운 어조로, 십자가는 영원히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자리가 말해 봅니다. 십자가는 경유지이지, 종점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넘어서서 부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꽃이 진 자리에 초록빛 생명의 잎새가 돋아나듯, 십자가를 넘어선 자리에서만 부활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꽃 진 자리에서만 생명이 맺히기 때문입니다. 꽃이 진 자리에서만!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