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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쓰임 받는 주의 종을 길러낸 기도의 어머니 ‘임종순 전도사

기사승인 [610호] 2024.03.29  11: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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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석 총회장의 어머니 “임종순 전도사!”

구약성경 사무엘상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는 아들이 없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나이다.”라고 서원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아들을 낳고 약속대로 하나님께 아들을 받쳤다. 어머니 하나는 다시 기도하기를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종이 기뻐함이니다”라고 감사하며 기뻐했다. 이로 인해 아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 뜻대로 이끈 위대한 선지자로 기록되었다. 이는 지난 3,000년간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어머니 한나의 결단과 믿음의 기도로 이룩한 자식을 성공시킨 역사적인 사건이다.

여기 한국판 한나와 같은 어머니가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수원에 소재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세한교회를 개척하여 중부권의 대형교회로 부흥시킨 주남석 목사의 어머니 임종순 전도사이다. 임종순 전도사는 결혼 후 아이가 없어 7년 동안이나 한나처럼 아들 얻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득남했다. 그는 아들을 위해 기도한 대로 양육하여 하나님께 드렸고, 훗날 목사가 되었다, 그렇게 얻은 아들이 군인 장교를 거쳐 목사가 되어 수원의 변두리에서 세한교회를 개척하고, 대형교회로 부흥케 했다. 그리고 그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05년차 교단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평생을 선교사역에 몸 바쳐 앞장서고 있다.

 

임 전도사의 성장과 결혼생활

 

임 전도사는 전북 익산시 낭산면 임경옥씨와 오윤섭 여사의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아버지가 한의원을 운영했던 덕분으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는 부모님의 신앙생활 덕분에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무엇보다 남달리 신앙심에 깊이 심취하게 된다. 그가 성장하면서 교회학교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며 성경학교 과정을 공부하게 되고, 복음의 전도자 길을 걷게 된다. 어린 17세 나이에 이웃 마을 신기면의 25세 청년 주종천과 결혼하게 된다.

애당초에 결심하기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가 있지만, 당시 상황에서 나라가 일제치하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젊은 아가씨들이 붙들려가는 판국이라, 이것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혼례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는 아버지의 판단으로 무조건 결혼부터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나에게 “신랑집 가문은 양반이다. 신랑은 지금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결혼하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네가 시집에 가면 최선을 다하여 전도하고, 온 가정이 신앙생활을 하도록 한다면 너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라고 딸을 설득했다.

임종순 전도사가 시집에 가서 알고 보니 시집의 친척 중에는 무당도 여럿이 있고, 무당의 지도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라서, 그리고 전통적인 유교 집안으로 제사 문화가 철저한 집안이었다. 시집 식구들을 기독교로 전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문의 역사와 문화에 순종하지 않으면 쫓겨날 처지가 된 것이었다.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화평이 아니라 전쟁과도 같은 삶”이었던 것이다. 임 전도사의 시집살이는 매일매일 사느냐? 죽느냐? 의 기로에 서서 시댁과의 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가야만 한다는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다.

말이라서 그렇지, 임 전도사는 영적으로 죽음에 직면한 시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들까지 구원에 대한 정신적 영적 싸움을 해야 했다. 마치 성경에 나타난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00명과 아세라 선지자 450명을 합한 850명과의 싸움을 앞두고 초긴장하는 형국과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이 어린 새색시 임종순은 기도와 믿음으로 철저하게 무장한다. 그것은 시부모님의 호령과 핍박이 무서워서 조상들의 제사를 해야 하고, 그렇다고 조상신을 섬기게 되면 친정아버지가 부탁한 시댁의 구원은 물 건너가고, 본인의 신앙도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눈물로 한숨만 내 쉬게 되었다.

시집살이의 핍박은 이에서 끝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버팀목으로 의지했던 남편이 말하기를 “나와 예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핍박하고, 폭력이 난무하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임종순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심의 아픔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했다. 그런데 그렇게도 간절히 소원했던 가족 구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결혼한 지 7년이 되어도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 애간장이 타들어 가고, 시집의 어른들은 눈치를 주면서 핍박이 날로 심해져만 갔던 것이다. 날이 가면 갈수록 기도의 제목이 늘어나고, 더욱 간절한 내용들이 눈앞에 줄을 이어갔다.

 

기도가 기적으로 응답 된다

 

임종순 전도사는 할 수 없이 날마다 교회를 찾아가서 강단 앞에 엎드리고, 눈물로 호소하는 기도로 한 많은 여인의 호소를 하나님께 드렸다. “불꽃 같은 눈으로 굽어보시고 능력을 주셔서 여종의 고통을 제거하여주시고, 연단을 종료해주십시오.”라고 간구했다. 그는 기도 중에 모든 시집 식구들이 반드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해주시기를 호소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찾아오겠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벅차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임종순 은 입에서 신맛의 음식이 당기게 된 것이다. 입덧이 시작되고 기도의 방향이 한나의 기도로 바뀌어서 “하나님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사무엘처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것은 7년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임신의 소식이라 더욱 간절한 것이다. 그토록 간절한 기도와 함께 태어난 아기는 아들이었고, 이 아들은 훗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05년차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주남석 목사이었는데, 온 집안을 진동시키며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난 것이다.

어린 아들 남석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임종순 전도사는 “정말 내가 낳은 아들인가?” 하는 생각으로 감사하며 양육했다. 어떤 핍박과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장래에 하나님의 종으로 크게 역사할 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잘 참고 견디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다음 호에 계속>

하문수 대기자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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