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하나님이 함께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자
기사승인 [633호] 2025.01.09 18:12:42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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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시편 탄식시의 구조적 특징B. 탄식시에 나타난 메타포의 삼각구도1. 하나님과 관련된 메타포14:4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는 자”크레이기는 본 절에 대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떡을 먹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떡을 먹었다”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신 8:3)”는 모세의 지혜와는 전적으로 무관했다. 따라서 그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의해 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고,
문답식 창조과학 (7)예수님의 “창조”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9:4-5)기독교는 영생(구원)의 종교이며 영생을 얻는 길은 요한복음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라고 하였으며 사도행전에는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겨울은 수묵화다. 늘푸른나무조차 깊은 겨울에는 그 푸르름을 잊어버린다. 상록수라 하여 그 초록을 어디 초록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겨울이 깊어 갈수록 묵의 색조차 옅어지고 선들만 남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작은 시선 ‘일엽지추’에 비추어본다면 그 무엇이든 깊어질수록 자신의 색채를 잃어가는 일이 아닐까, 무엇이 ‘되어감’으로 무엇을 잃어가는 일, 존재를 완성해 가는 것이 어쩌면 가득 찼던 존재성을 끊임없이 잃어가고 버려지고 퇴색해 가는 게 아닌가.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죽음을 향한 여정인 것처럼, 그것도 우회나
사람은 다양합니다. 섣불리 이해할 수 있다는 건 큰 착각입니다. 어떤 가수는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몰라도 그의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다들 압니다. 내가 평생 나의 주인으로 살면서 도통 모르는 게 자신입니다. 언제 낙심하는지, 언제 희망을 품는지, 어떤 상황에 좋은 마음이 되며, 어떨 때 슬픔에 사로잡히는지 개인차가 있지만 자신이 종잡을 수 없습니다.2024년 한 해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체중을 5kg 정도 줄였습니다. 허리둘레도 목표한 대로 2인치쯤 줄였으니
연말연시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았다. 지난 한 해의 아쉬움을 뒤로하기도 전에 벌써 새해의 첫 페이지가 시작되었다. 2025년 새 다이어리를 작년 11월에 샀는데 벌써 2025년의 스케줄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지난 연말연시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씀씀이도 예전 같지 않았다. 과거 연말연시에는 연인끼리 선물도 주고받고, 카페에서 연말연시의 아름다운 추억들도 많이 만들었다.하지만 이번 연말연시에는 지난 코로나19 때처럼 경제가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연말연시 이것저것 챙기고 사야 할 것들이 한두
김형석 교수가 99세에 쓴 <행복 예습>이라는 저서가 있다. 그는 90세를 넘어 비로소 행복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는 일하는 기쁨과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 백년을 설계한다면 사랑있는 고생이 행복이라는 걸 기억하라고 조언한다.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일생의 과정이 행복을 찾는 여정이다. 결혼도 그 과정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모든 결혼이 행복을 찾게 되는 건 아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행복을 찾아간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중도 하차하고 돌싱이 된 자들이 있다. 통계적으로 한국 사회는 대략 네
신서교회에서 파트타임 전도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저에게 구역을 맡아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2구역을 맡겨주셨습니다. 한 구역은 이성실 권사님이 계신 구역이었고 다른 한 구역은 박덕자 권사님이 계신 구역이었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구역예배를 인도할 수 없기에 이틀에 걸쳐 구역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두 구역 모두 우리 집에서 먼 거리에 있었기에 차로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저는 열정을 가지고 구역예배를 인도했습니다. 파트타임 전도사가 무슨 구역까지 맡아서 해야 하느냐는 식의 불평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잠언 7:1-2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2.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3.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4.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5.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6.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7.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9. 저물
II. 엘마 길보른과 성결교회의 한국전쟁 후 복구사업3. 서울신학대와 동양선교회이건, 박현명, 최석모, 박형규, 김유연, 유세근 등이 납북되었다. 이들은 교단의 지도자들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신학교의 중심인물이었다. 신학교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피난지 부산에서 문을 연 것은 1951년 6월 14일이었다. 피난지에서 새롭게 신학교의 지도자로 부상한 것은 이명직 목사였다. 아울러서 이렇게 신학교가 개교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은 동양선교회였다.동양선교회는 서울신학교 복구에 최선의 노력을 했다. 우선 동양선교회 선교사들을 신학교
10세기에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도시는 12세기말에 로마 시대를 능가하는 번영으로 이어집니다. 도시가 다시 번성한 요인의 하나가 인구 증가 및 자유민 증가입니다. 농노의 수는 감소하고 자유민의 수가 증가하며 늘어난 인구가 도시로 모여듭니다. 경제적으로 도시가 장원제에서 화폐 경제로 옮겨지면서 가난해지는 영주와 기사들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약해집니다. 이로 인해 해결사를 자처하거나 강도생활로 방랑하는 기사들이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이것은 화폐경제가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이 활발하기 때문입니다. 12세기말에 상인들의 활동은 해상과 육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