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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 사모편지(연재)

기사승인 [455호] 2019.09.05  17: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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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주는 기쁨

                        위 영 작가

나이가 드니 건강에 대한 염려가 조금 생겨서 걱정 분산책(?)으로 밤이 되면 걷기를 합니다. 마침 가까운 지하철 길옆으로 주욱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요. 풍산 역에서 시작해 백마 곡산까지 왕복을 걸으면 두 시간여, 7-8KM 정도를 걷습니다. 어느 때는 반대쪽으로 일산 탄현까지 걷기도 하죠. 걸음도 조금씩 느는 건지 점점 걷는 시간이 짧아지는 듯해서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거나 길가에 있는 운동기구를 조금씩 이용하기도 합니다. 밤이라 선크림 바를 필요도 없고 옷에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대신 헤드폰과 핸드폰은 필수입니다. 이어폰은 고막에 너무 가까워 늙어가는 귀에 좋지 않을 듯해서 음악 들으려고 사놓았던 질 좋은 헤드폰을 낍니다. 네이버 열린 연단에는 우리나라 석학들의 정제된 강의들과 강의 못지않게 흥미로운 연찬, 토론들이 엄청나게 쌓여있습니다. 교육진흥원에서 경영하고 있는 K-mook에도 대학교수들의 특별한 강의 들이 무궁 무진 합니다. 더군다나 길은 평평하고 부드럽고 환해서 강의를 들으며 걷기에는 최적화된 길입니다. 그러니까 두 시간여 동안 걸으면서 목적 없는 공부를 즐기는 거죠. 목적 없는 공부니까 당연히 좋아하는 것들만 듣습니다.  집중력은 최대치고 지루할 틈이 없어요.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걷기 싫을 때도 강의를 들으려고 집을 나서기도 합니다. 새로운 방향의 앎도 있지만 알았던 것들이 정리 되는 경우도 있어요.  가령 번역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바벨탑에서부터 시작된 거시적 조망 속에서, 번역이 단순한 문자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문학과 사상, 철학과 문학등 다소간 어긋나 있는 지평들을 넘나들며 역사 속에서 知의 순간들을 고안하는 주체였다는 겁니다. 모르던 분야이기도 하나 새로운 각도의 지적 조망이 빚어낸 눈부심이 느껴지더군요. 연찬이 이어지고 토론 시간에는 공학을 전공한 교수가 공돌이(?)의 번역한계 때문에 많은 문제가 파생되어 나라의 번역 부서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그곳에서는 또 전문 용어를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 번역하기 어려우니 공학자들께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우스개를 담은 한탄을 합니다. 수학은 번역이 필요 없는 언어이고 피톤치드는 원래 식물이 지닌 살생물질인데 그게 정확하게 번역되지 않아서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라더군요. 강의자가 사람이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게 혀하고 입이 자유로워서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성대가 자유로워서라는 지적을 듣다가 혼자 푹 웃기도 했습니다. 등가어로 번역되던 소주 마루 아줌마 오빠 도깨비 등의 우리나라 고유어가 음차를 사용해서 그대로 번역이 된다는 사실은 즐거운 이야기더군요. 번역가들 사이에 통용되는 ‘불충실한 미녀 번역’은 가독성은 좋은데 원문을 배신한 경우를 일컫는 문장이라는 구절도 흥미로웠어요. 목적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중에 썩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 써먹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써먹을 수 없는 일에 나의 시간을 주는 것.
  관조觀照는 제가 참 좋아하는 단어로 묵상과도 매우 밀접하게 여겨집니다. 사전의 뜻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일, 혹은 미(美)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일을 일컫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만, 덧붙여 제 나름의 풀이를 더해본다면 나이가 들어서야 설 수 있는 지점, 하나 더 붙이자면 대상에서 한발자국 살짝 비켜난 지점에 서는 일이라고 풀이해보겠습니다. 조금 더 객관화 되는 자리이고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는 위치이며 조금 더 깊게 응시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겠지요. 관조는 삶을 깊게 묵상하는 자리 같기도 합니다. 
 처서 중후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드는 시간입니다. 선비들은 처서 무렵이면 여름에 눅눅해졌던 책을 포쇄했는데 마음을 말리는 포쇄도 생각해봅니다. 쇄락한 초가을 바람이 살갗에 스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삶이 흥미로워지고 별빛은 더욱 반짝입니다. 자연이 연인이 되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가 된 거죠.  사람들과의 설렘과는 격이 다른 깊은 감응입니다. 나이가 주는 기쁨이라 명명해봅니다. 총총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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