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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탐방/중앙성결교회]

기사승인 [482호] 2020.05.21  11: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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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년의 역사, 한국성결교회의 모태교회

                           한기채 담임목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중앙교회(한기채 목사)는 1907년 5월 30일 일본 ‘동양선교회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정 빈과 김상준 두 청년 전도자가 서울 염곡동(현 종로 2가)에 허름한 집 몇 칸을 월세로 얻어 ‘동양선교회 경성복음전도관’이란 간판을 붙이고 시작했다.
정 빈과 김상준은 초기에는 동양선교회의 촬스 E. 카우만(Charles Elmer Cowman)과 어네스트 A. 길보른(Ernest Albert Kilbouren)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열성적으로  전도했으며, 이들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전도 표제로 삼고 순수 복음을 전파하여 1908년에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다.
그들은 조그마한 한옥에서 예배드리며 시장과 길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집회를 하고, 구도자를 가까운 이웃교회로 인도하는 일로, 예수구원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하면서 일본의 동양선교회 전도방침에 따라 노방전도, 축호전도, 시장에서의 집회 등으로 전도사역을 감당하였다.
‘경성복음전도관’은 1909년 중구 무교동 12번지로 이전하고, 1912년에 카우만 선교사의 부인 레티(Lettie)가 헌금하여 교회당을 건축했으며, 성경공부반을 신설해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으로 발전시켰다.
                                                                     초기 성전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를 열심히 한 결과 1915년에 ‘경안복음전도관(현 경주교회)’을, 1917년에는 ‘독립문복음전도관(현 한우리교회)’ 그리고 1920년에는 ‘체부동복음전도관(현 체부동교회)’을 개척하였다.

중앙교회 창립자 정 빈은 1870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부터 한문을 수학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학문을 터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이 10세가 되면서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893년에는 S. F. 무어 선교사의 전도로 연동교회의 신자로 입교하여 일본인 나까다와 의사인 고명우의 소개로, 1905년 일본 유학을 떠나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김상준을 만났다.
김상준은 1881년 평안남도 용강군 오신면 구룡리에서 경북 의성김씨 김상봉의 외아들로 출생하여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한학을 배우며 성장했으나, 나이 20세가 되던 어느날 평양시내로 부모님의 심부름을 나갔다가 우연히 노방 전도단을 만나 복음을 접했다.
마침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 문화에 적응하면서 즉시 상투머리를 자르고,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가 헛된 것을 깨닫고, 제사를 거부하게 되자 집안과 부친으로부터 심한핍박과 멍석말이까지 받게 되지만 끝까지 목숨 받쳐 믿음을 지킨 신앙인이 되었다.
그 뒤 김상준은 의사 고명우의 소개를 받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한 뒤 그 곳에서 한국인 정 빈을 만나 친한 사이가 되었다.
■ 중앙교회 역사일부 수록.
1921년 9월 교회명칭을 ‘경성복음전도관’에서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무교정교회’로 변경하였고, 일본에서 홀리네스교회가 부흥하게 되자 일본에 본부를 두었던 동양선교회 본부를 한국으로 옮기고, 감독으로 길보른 선교사가 부임했다.
1943년 5월 24일 조선예수교 성결교회의 전국 교회 교역자들이 검거되고, 신사참배 거부사건으로 9월에는 교회에서 예배중지 명령과 주일학교 해산, 12월 28일에는 성결교회전체 해산명령이 일본정부로부터 발휘되어 중앙교회가 타인에게 넘어갔다.
194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교회명칭을 무교동교회로 변경하고 김유연 목사가 목회를 맡아 몇몇 신자들을 모아 가정에서 부터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1946년 3월에 이성봉 목사가 이북에서 월남하여 제15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교회를 재건했다.
1955년 황성택 목사가 서울신학교 교수에서 서울중앙교회 제18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1957년 9월 1일 콘크리트 2층 건물 270평을 성결교회50주년 희년기념관 겸 교회 건물로 신축하는 기공식을 거행했다.
1974년 1월 황성택 목사 원로추대와 이만신 목사 제19대 담임목사로 부임, 1978년 7월 10일 무교동 12번지의 서울중앙성결교회 건물을 매각, 그 해 7월 17일 종로구 종로 6가 11번지 대지 851평을 매입, 1980년 11월 11일 성전건축으로 봉헌식과 교회명칭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중앙교회’로 개칭하여 현판식을 가졌다.
1984년 4월 25일 이만신 목사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장에 당선되어 교단업무를 교회적으로 협력하여 교단발전에 이바지 했다.
2004년 4월 11일 한기채 목사가 제21대 담임목사로 취임하고, 교회 전체 분위기를 교육체계화 하여 다음세대 육성은 물론 교회창립 100주년 기념사업확대에 역점을 두고, 교회100주년 비전선포식을 개최함에 있어 전교인 총동원령을 내렸다.
2007년 1월 몽골인 예배신설 등 해외선교와 교회건물 중 본당 리모델링으로 예배분위기를 바꿔주고, 지역사회봉사활동을 강화하여 100명에게 개안수술과 학술심포지엄 등을 개최하고 교회주변의 변화를 추구했다.
                       현재 성전 모습

현재 중앙교회는 한기채 담임목사를 2020년 제114년차 교단 총회장으로 활동하게 앞장세워 교단의 모체교회 면모답게 전체 당회원과 교인들이 똘똘 뭉쳐 교단발전에도 최선을 다해 힘쓰고 있다.
한편 한기채 목사는 금년 5월 27일에 교단 총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추진할 업무로 총회결의를 거쳐 총회본부 재건축을 시작하는 것과 교단역사관 신설, 작은교회 부흥활성화, 교역자목회 코칭사업, 코로나19사태에 따른 해외선교 등이 과중한 업무로 추진해야하기에 교단 전체교회들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야할 것으로 사료되는 바이다.
특별히 총회장업무를 헌신예배로 시작하기 위해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에서 농어촌 교회에서 오래토록 시무하면서 고생한 교역자 114명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드리며 다짐하는 계획은 교단 인들에게 고무적이라 말할 수 있다.
업무상 바쁜 일과 중에도 본지가 기획시리즈로 한국성결교단의 114년 역사적인 교회들을 탐방하는 사역에 협조해주신 중앙성결교회와 한기채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하문수 대표기자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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