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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의 이야기 교회사(14)

기사승인 [614호] 2024.05.23  04: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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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논쟁과 아타나시우스

박용궁 목사(D.Min., 많은샘교회 담임, 미국 루터신대(LTSP) 졸업)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교리나 신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고백하는 것을 신앙의 기초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또한 지역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이해에 혼선이 찾아옵니다. 이제 교회는 확고한 신앙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이해시킬 당위성도 깨닫게 됩니다.

2세기부터 기독교인들은 성서적 단일신론과 세례식에서 고백되는 삼위일체론의 관계를 주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신 하나님이라면 성자의 고난에 성부도 함께 있어야 옳다고 합니다. 반대로 삼위의 하나님을 생각하면 성부와 성자는 엄연한 차이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슬프게도 이러한 문제는 순수한 신앙과 성경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해석하고 주장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입장이 단순하지도 않고 복합적인 요인에 의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아리우스에 의한 위기입니다.

아리우스(Arius)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이며 안디옥의 루시안(Lucian)의 제자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있지만 경쟁 관계인 안디옥학파 출신입니다. 그는 시작이 없이 존재하는 하나님의 독자성을 강조합니다. 반대로 이 하나님이 성부라면 성자는 어느 순간에 시작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성자는 성부에 종속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때 당연히 성경을 근거로 주장합니다. 아리우스는 「잠언」 8장 22절과 「요한복음」 14장 28절을 그의 확신에 대한 지지로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고, 그는 무(無)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봅니다. 결국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 아니며 완전한 인간도 아닌 제 3의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러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이 이론에 반대합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주교의 비서인 부제(deacon)로 출발한 인물입니다. 알렉산드리아학파입니다. 그는 「요한복음」 1장에 근거하여 성자(말씀)는 성부와 동등하게 영원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말씀이 완전한 신이 아니라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신앙의 고백으로부터 답합니다.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얼마나 이해되시나요? 당연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에 따라 회의와 토론들이 개최되지만 쉽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콘스탄티누스는 「서신」에서 이러한 논쟁이 일반인에게는 무가치하다고 하여 구원의 문제로 받아드린 알렉산드리아 측과 맥을 달리합니다.

아타나시우스가 목회자 진영이라면 아리우스는 일반인들이 따릅니다. 극장에서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을 비꼬는 유머가 난무합니다. 아리우스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SNS만큼이나 파급력 강한 수단이던 노래로 만들어져 퍼져 나갑니다. 특히 항만 노동자들까지 가세한 소요가 나타납니다. 결국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318년에 교회로부터 추방됩니다. 아리우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지지자들을 규합하고 출신배경인 안디옥에 협조를 구합니다.

이 논쟁은 양측이 공히 성경과 전승에서 자신들의 근거를 찾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리우스의 주장은 배격됩니다. 교회는 아타나시우스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혹독합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황제의 종교자문인 코르도바(Cordoba)의 감독 호시우스(Hosius)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는 신앙만이 아니라 황제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모호한 단어로 정의하여 정치적으로 동방과 서방에서도 더 폭넓게 동의하는 쪽으로 유도합니다.

이제 문제는 공의회가 결의했어도 지역적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약되면서 지속적인 항의를 받게 됩니다. 이후로 아타나시우스는 328년 알렉산더 감독의 사후, 차기 감독직에 올라 379년 임종 때까지 5번이나 감독직을 박탈당하고, 17년 동안 유배를 당합니다. 비록 아타나시우스가 확고한 신앙을 지켰을지라도 세상의 시각으로는 슬픈 인생의 나락을 겪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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