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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비밀의 왕국 가야

기사승인 [607호] 2024.02.29  08: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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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제목: 1세기 가야는 기독교왕국이었다(31)

도마는 어떤 사람인가?

 

이용봉 목사(진주중앙교회 원로)

3. 제자 도마 

  1) 에뎃사(Edessa) 

  아따이의 선교

BC 612년 니누웨가 몰락하고 이어서 BC 538년 바벨론이 멸망하자 이들의 세력에서 자유롭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 단합하여 이스라엘의 특징을 드러내었다. 이들은 야웨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고국을 떠나 먼 이국 생활을 그들만의 독특한 예배를 드림으로 향수를 달래었다. 곧 성전이 없는 곳에서 ‘성전제사’를 드릴 수 없으므로 새로운 모습의 예배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시편 137편의 말씀과 같이 기도를 더 강조하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유대가 망하자 더 많은 유대인이 이 지역으로 이주했고 이런 예배는 더욱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다신의 신앙으로 많은 선지자의 책망을 들었고 선지자들의 외침대로 나라가 망한 것을 애석해하였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유일신 신앙을 되찾으며 모세의 율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이런 신앙이 앗수리아 사람들과 바빌론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로써 이들의 정결한 신앙을 흠모한 많은 이방인이 유대교에 개종하였다(왕하 17:27-28). 

요세프스는 AD 3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아디아벤 지방의 모노바주스(Monobazus) 1세 왕이 유대교에 대하여 호의적이라고 적고 있다. 그런데 이 아디아벤 지방은 빠르띠아제국(the Parthian Empire)의 속국 왕국으로 BC 247년부터 AD 224년까지 약 500년간 지속한 제국을 말한다. 이 왕도는 ‘네 신의 도시’(The City of Four gods)라는 뜻을 가진 알바이루(Arbailu)다.

이 왕국의 헤레나 여왕은 그의 아들 이자데스(Izates)와 함께 유대교로 개종하였는데 헤레나는 아디아벤의 여왕으로서 고대 빠르띠아의 지배를 받았던 예속 왕국인 아디아벤의 왕인 모노바주스 1세의 여동생이며 그의 아내였다. 헤레나는 이자테스와 모노바주스 2세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이 여왕은 AD 30년경에 그의 아들들과 함께 유대교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예레아잘(Eleazar)과 하나니아(Hananiah)라는 두 유대인 순회 상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당시 유대인들이 유대교 신앙을 선전하던 때였고 이 두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에 와서 선교하였다. 매우 열정적이어서 유대인들에게까지도 감동을 주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곧 이들은 성전에서 쓰이는 많은 물품을 수집하여 공급하였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들의 충정을 기려서 이들을 예루살렘의 한 지역을 주어 매장하도록 하였는데 이들이 안장된 곳이 바로 ‘왕들의 묘원’(Tomb of Kings)이라는 곳이다. 이렇듯이 이 지역은 추방된 유대인의 공동체가 모여 있는 곳으로 BC 6세기부터 중세시대까지 번성하였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까지 가는 길은 4가지의 길이 있다. 가장 가까운 길은 하부 동서의 길로 예루살렘에서 듀마를 거쳐 가는 약 950Km의 길이고 상부 동서의 길은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을 거쳐 필미라로 그리고 안디옥에서 마리를 거쳐 바벨론에 이르는 1,150Km의 길이다. 세 번째 길은 안디옥의 길로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마리로 가는 길인데 약 1,450Km이고 마지막으로 에뎃사 아르베라 길이 있다.

이 길은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 안디옥에서 니시비스와 니누웨를 거쳐 아르베라로 그리고 바벨론으로 이어지는 약 1,700Km의 길이다. 이 길들은 적어도 BC 853년경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길들이 중요한 것은 이 길들을 따라 고을들과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곧 솔로몬의 시대에 이 길이 동서무역의 통로가 되어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어 대상들의 숙소와 쉼터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앗수르의 포로로 인하여 축출당하거나 도망하여 온 이스라엘 사람들 후일에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인 AD 70년 이후에도 도망쳐 온 예루살렘 거민들이 와서 살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따이가 에뎃사에 선교하고 이어서 아디아벤 지방으로 가서 선교하자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 후에 도망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함으로 복음이 더욱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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