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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38)

기사승인 [600호] 2023.11.30  07: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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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와 섬 교회의 아버지, 김용은 목사님을 기리며

김용은 목사

■ 최명숙 목사(베데스다장애인선교회): 내가 만난 김용은 목사님

목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40년 전 겨울이었지요? 장애인을 위한 행사에서 제가 발언을 하고 있을 때, 내빈석에서 풍채가 당당하신 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해 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후로 만날 때마다 제 등을 툭 치시면서 “힘으로 못하는 일을 말과 글로 해라!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하셨지요. 목사님은 늘 압축된 한 두 마디의 말씀으로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인지 저는 지금도 수필 형식의 신앙 칼럼을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군산시 자문위원으로 KBS에서 정기적으로 발언을 하실 때는 “오늘 방송국에 가는 날인데 장애인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하는 게 좋겠느냐?”고 제 의견을 묻기도 하셨으며, 또 음성이 맑고 말을 똑똑하게 잘한다고 칭찬하시더니 저를 아나운서를 시키고 싶으셔서 일부러 몇 번이나 방송국엘 가보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었습니다. 목사님의 생각은 늘 일반적인 사람들의 통념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셨던 대로 지금은 장애를 가진 이들도 앵커(Anchor)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장애인 인식개선’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당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목사님은 과연 시대를 앞서가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장애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치열하게 사역을 해왔습니다. 정말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체험했지요. 그리고 제게 있어서 목사님과의 만남은 주님 안에서의 커다란 빛이었습니다. 목사님, 저 뿐 아니라 평생 어렵고 힘든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사랑으로 품으셨던 목사님의 그 품은 얼마나 넓으신지요? 갈수록 진정한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면서 목사님의 그 넓은 품이 그리워집니다.


■ 김희근 목사(연안선교회 총무 역임, 군산풍성한교회 담임): 김용은 아버님을 기리며

아버님은 총회장을 하셨지만 늘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총회장이 되셨다고 말씀하셨다. 교단의 정치적 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아버님이 총회장이 되야만 하셨던 사정 때문이다. 가족사를 돌아볼 때 6.25 때 정읍 소성면에 소재한 교회에서 가족을 비롯한 23인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공산당들이 퇴각하면서 이루어진 애달픈 일이었다. 순교자 추모예배를 드릴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을 읽을 수 있었는데 순교자의 신앙이 평생 아버지의 목회를 이끌어가셨다고 여겨진다. 또한 아버님은 평생 은퇴가 없는 삶을 살아가셨다. 교회에서 은퇴하시고 원로로 물러나신 후에도 교도소선교회, 노인선교회, 외항선교회, 연안선교회에서 활동하셨다.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들에게 늘 희망의 말씀을 전하시고 위문품을 전달하셨으며, 군산에 소재한 노인들을 모아서 노인선교회를 만드시고 월마다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노인들을 신앙으로 독려했다. 나이 많아 늙어서 소망이 없는 노인들에게 천국을 사모하며 걸어가게 하신 사역이었다. 외항선교회에서도 오래 활동하시며 외국 선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셨으며 다른 목회자에게 직임을 넘겨주고 늘 관심 갖고 협력하셨다. 연안선교회는 미신과 우상숭배에 찌들어 있는 국내 선원, 어부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회이다. 군산의 지부장으로서 십수 년을 활동하시며 매월 선원들이 물고기를 하역할 때 따뜻한 차를 준비해주고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복음을 증거하셨다. 이러한 활동들을 하시며 선교회 자금을 마련하시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항상 현역의 모습이셨다.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늘 엄격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시려는 애씀을 느꼈다. 심방과 기타 교단의 일로 힘드실 때도 새벽예배를 늘 엄격하게 지키셨으며, 철야기도회, 수요예배 등을 인도하시면서 교회를 지키셨다. 자식인 나도 생각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아버님은 사역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활동하셨다고 느껴진다. 돌아보면 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기대만큼 살지 못한 듯하여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남은 생,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발자취를 따르는 믿음의 자녀로 승리하길 기도해본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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