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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2)

기사승인 [600호] 2023.11.29  2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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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정

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프랑스에서 이틀, 스위스에서 하루는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됩니다. 알프스산맥을 뚫은 17Km 터널을 지나서 이탈리아반도로 내려갑니다. 밀라노에서 여러 문화 유적들을 봅니다. 로마 전성기의 기운이 그대로 서렸습니다. 섬으로 이뤄진 베니스는 수로가 도로입니다. 그 바다 위에 어떻게 지었을까 싶게 떠 있는 웅장한 성당들은 여전히 장엄합니다. 각각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다 낡고 오래된 호텔들입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편리한 시설들을 갖추고 산다는 점을 다시 인식합니다. 피렌체를 들러 단테의 생가에서 잠시 멈춘 다음 마지막은 로마 외곽에 짐을 풀고 내리 사흘을 묵었습니다. 나폴리, 소렌토를 지나는 동안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 우중에 베수비오 화산으로 매몰된 폼페이를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도시 로마입니다. 30년 만입니다. 신학대학 입학 4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여정입니다. 나 같은 늦깎이 아닌 친구들은 마침 회갑 됩니다. 여정과 함께 누리는 친목은 거의 하나님 나라를 이룰 만큼 따듯하고 정겹습니다.

로마는 한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인 도시입니다. 2천 년 넘은 세월을 지켜온 육중한 대리석들로 가득한 고대 성곽, 왕궁, 회당, 성당들입니다. 웅장할 뿐 아니라 그 내면은 여인 옷자락의 부드러움까지 섬세하게 새겼습니다. 심지어 도로도 돌을 세워 모자이크로 만들었으니 그들의 건축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을 정면으로 막아선 권력이며, 돌이켜서는 복음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통로로 사용된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연결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거기서 길을 잃었습니다. 바울이나 베드로 같은 사도들의 길은 명확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마와 그 문화에 전파하는 일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로마의 반대입니다. 대항할 엄두로 못 낼 만큼 강합니다. 시간과 돈과 열정을 담보로 씁니다. 마지막에는 각각의 마지막 자산인 목숨을 바쳐 이뤄냈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더라고 전해오는 유적지, 바울이 갇혔다가 참수당했다는 기념 성당에도 들렀습니다. 그들의 올곧은 길을 더불어 따를 각오와 결단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정확한 복음은 자주 혼동됩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로마 정권이 밖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발달한 철학이나 심리학 등 화려한 사상적 요술들이 내면에서 작동하기도 합니다. 영혼의 성찰이 섣부르면 화려하고 다양한 색조의 그림이나 웅장한 건축물, 혹은 기막히게 깎아 놓은 조각물들이 주는 외경심에 빠져들고 말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빌미로 내세워 민중의 고혈을 짜냈고 민중을 속여 그 일을 거룩한 일로 치장합니다. 소위 ‘성전’으로 조작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건 사람의 본성에 닿는 종교성을 자극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게 지어진 건축물이나 조각상이나 그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리석 조각이 닳도록 입 맞추거나 만지는 것으로 신통력을 기원했습니다. 복음 아닌 종교적 현상일 뿐입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열망으로 마침내 목숨까지 바쳤던 복음의 실재와는 사뭇 달라, 다만 종교심일 뿐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러니 450년이나 걸려 성전으로 지어낸 밀라노의 장엄한 ‘두오모 대성당’ 앞에서도 그들이 지향한 종교성의 화려함 앞에 단지 우중 나그네로 홀로 남아 잠시 영혼의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 종교적 화려함의 극치를 경험하던 중 길을 잃은 한 청년, 마르틴 루터의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라는 일갈로 비로소 잃었던 참 복음의 길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그 복음의 길에 섭니다. 아무리 혼란이 화려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을 이어갈 일입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로마처럼 폐허로 전락하지 않을 길이니까요. 우리는 새 예배당을 지으면서 내내 ‘성전’이라는 말을 아꼈습니다. 습관적인 이름 ‘성전’에 담긴 뜻을 넘어서 고집스럽게 ‘예배당’으로 칭한 내막입니다.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성전이 아니라 영원한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예배를 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나누는 예배당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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