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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125)

기사승인 [599호] 2023.11.08  20: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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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림절의 의의와 에스더서의 신학적 특성

서울신대 13대 총장, 명예교수

4) 이스라엘 땅에 대한 무관심 : 종족(씨)에 대한 관심

에스더서의 사회-정치적 차원에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특성이 있다. 첫째는 외국의 권력(힘)을 전복시키려는 비전이 없다는 것과 둘째는 제국 내에 있는 유다인들을 멸절시키려는 하만의 계책(반셈족주의 : anti-Semitism)을 진압하려는 의도에서 일어나는 극적, 기적적 전환이 있을 뿐이지 이스라엘 땅을 회복한다든가 포로생활을 바꾸려는 그런 희망은 전혀 암시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저자는 분산된 유다 민족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어떤 메시아의 도래라든가, 이방 세력을 뒤집어엎는 묵시문학적 기대나 언약의 땅과 성전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다시 세우려는 승리의 회복을 희망하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이유는 본서에서 제시하려는 씨신학과 관련되어 있다. 에스더서는 바로 종족(씨)에 관심이 있다. 그것도 아담에서부터 시작된 여인의 후손에 이르는 구속사적 씨흐름이 마지막 단계에서 하만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해 단절될 급박한 위기에서 종족적 보존, 씨흐름이 계속될 수 있게된 상황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사 섭리 의지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보존 외의 일, 땅이라든가 예루살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더 깊이 살펴보면, 또 다른 이유는 지금 하만에 의한 유다인 학살은 페르시아 궁정이나 수산성 그리고 옛 바벨론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유다인 멸종 시행 조서에 의하면,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권이 미치는 127도에 흩어진 유다인 전체, 즉 1차 귀환 때 돌아온 팔레스틴의 유다인 뿐만 아니라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아프리카 일대에서 파키스탄의 근동지역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세계에 흩어진 모든 유다인들을 학살하는 조서이기 때문에 땅의 경계나 한계가 없을 정도였다. 이 에스더서의 관심은 수산성이나 궁정의 유다인만이 아닌 당시의 세계관에서 보면 전 세계에 흩어진 유다인들의 생명을 담보하는 운명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유다인들 속에는 아담에서 숨차게 달려온 구속사적 씨흐름의 당사자들이 어느 곳에 있었건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생명이 유지되어야 했고 씨흐름의 단절은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에스더서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종족 보존이며 씨흐름을 존속시키는 일이며 구속사를 진행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5) 신명칭 배제의 이유 : 하나님 구원신학 강조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참으로, 우리는 이야기 내용을 특별하게 하고 아주 유다인을 박멸시키려는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게 만든 색다른 형태의 분명한 우연의 일치(동시발생 사건)에 하나님이 무엇인가 역할을 감당하셨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페르시아 궁정에서의 왕후가 잠시 공석된 일이라든가, 그래서 한 유다인 처녀가 그 왕후의 자리에 아주 적절한 시기에 알맞게 등극한 일, 때마침 모르드개가 내시들의 역적모의를 발견하게 된 일, 에스더가 준비한 잔치를 받아들인 왕의 결단, 위기의 순간이 막 닥친 적절한 때에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여 모르드개의 공적이 적힌 책을 읽게 되는 일, 그 찰나 궁궐에 하만이 아침 일찍 도착하여 대령하고 있었던 일, 하만의 에스더 앞에서의 앞뒤를 가리지 않는 무모한 간청 등 여러 가지 우연의 일치가 많았다. 이런 수많은 이야기에는 분명히 신학적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가 없으면 왜 기록이 되고 정경에 들어갔겠는가? 특이한 우연의 일치로 발생된 사건들을 모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나 그 하나하나에서 신학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우연의 일치 하나라도 하나님의 익명으로 남길 원하시는 하나의 기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이야기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은 어떤 높은 힘, 하만이 부르(제비)를 던져서 알아내는 운명보다도 더 높은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에스더서 자체에는 분명히 나타난다(4:13-14).

사건의 진전 과정을 깊이 음미하여 읽어보면, 그 모든 사건들이 그 전개라든가 여러 요소가 보이지는 않으나 실제로 작용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개입에 의해 결정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6) 종교의식의 배제 이유 : 신앙과 삶의 조화

에스더서에는 종교의식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울부짖음이나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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